[임성빈의 문화칼럼]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2부






목회자 이중직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2부 찬반 논변과 대안 제시

[1부 현실과 신학적 근거]

임성빈(장신대 교수(기독교윤리학), 문화선교연구원장)



(1부 현실과 신학적 근거에서 계속)

4.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찬반 논변 : 윤리적 관점에서

 

신학적 전통과 그 해석의 차이에 따라서, 더욱이 오늘 경제상황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해 반대와 찬성의 입장이 나누어지고 있다. 우리는 상반된 관점에서 비롯된 주장들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

이중직을 반대하는 신학적인 이유 중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도 있다, 그것은 먼저 목회자는 구약의 대제사장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막상 분명한 지지를 받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전통에서도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오히려 이중직의 문제는 깔뱅이 말한 교회의 질서차원에서 고려될 수 있는데, 이중직의 허용이 자칫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함으로 궁극적으로는 직임의 혼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전통적으로 설교자로서의 교사직분과 성례의 집행 그리고 축도 등을 행할 수 있는 직임을 부여받는데, 목회자의 이중직이 허용될 경우, 더 나아가 급진적인 해석의 경우 전통적으로 목회자에게 부여된 역할에 혼선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직분의 차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의 재세례파의 경우 만인제사장 이론을 수행하면서 성도들 사이에 있는 모든 직분의 차이를 완전히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던 예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이중직에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직업윤리적 관점에서의 전문성과 헌신의 문제이다.

목회자가 이중의 직업을 갖지 말아야 할 이유로 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일을 통해 얻게 되는 금전적 이익이 목회자의 소명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베드로, 세관 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마태처럼,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세속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통해 목회로의 소명도 그러한 것이라고 일치시키기에는 상황의 불합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위해 한정적으로 이루어진 행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목회자의 이중직은 직업윤리적 관점에서 목회자의 정체성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논거이다. 목회자로서의 자신의 대한 정체성혼란은 자칫 목회자의 도덕적, 영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들이 스스로를 B급 목회자로 자조하거나, 교인들 또한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또 하나 우려할만한 점은 이러한 이중직의 허용이 자칫하면 목회자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 목회자, 이른바 목회에만 전념하는 교역자들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직업의 전문화가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직업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목회영역 또한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수행해야 할 직업 분야가 되었다. 현대 교회가 다루어야 할 목회의 영역이 다원화되고 심화되면서 목회자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목회자로서이 지적 능력과 리더십, 설교, 행정 능력, 영적인 통찰, 상담의 기술 등 목회자로서 갖추어야할 다방면에 요소가 있으며 이것은 많은 시간과 수련기간을 필요로 한다. 목회자의 이중직이 자칫 목회능력의 탁월성을 저해한다면 이것은 목회자로서 부덕(不德)한 것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덕의 윤리(ethics of virtue)에 따르면 어떤 영역에서 탁월하다는 자체가 도덕적인 것이고 그것이 선(good)한 것임을 주장한다. 구태여 서양의 윤리전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목회의 이중직은 고도의 전문성과 탁월성을 요구하는 현대의 직업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부덕한 행위를 초래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목회자와 교회의 수준 전반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이중직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은, 단순히 법 하나만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예상치 못한 여러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즉 교회가 이중직을 허용하게 될 때, 교회는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중직이 가능한 사람들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비단 담임목사뿐만 아니라 부교육자 청빙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다. 마치 안락사 법의 합법화가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있는 도덕행위자로 하여금 본인의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선택하게 만드는 사회적 문화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중직의 합법화가 목회자들로 하여금 이중직을 선택하지 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도덕행위자의 책무(accountability)의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도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한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목회자가 생활문제로 목회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도록 힘쓸 의무가 있다. 목회환경은 일정한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사역이 아니라 24시간 대기상태에 있는 그야말로 풀타임 사역이다. 설교, 장례, 심방, 결혼, 사건 사고, 기타 교회의 행사 등,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것이 목회의 영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의 이중직 합법화는 목회현장의 긴박성을 간과하고 책임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목회자가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목회의 영역을 전부 요구하면서 목회자에게 생활까지 책임을 지우는 것은 목회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하지도 윤리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찬성

목회자의 이중직을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유가 우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쏟아지는 목회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지는 필연적으로 무임목회자 혹은 적은 사례비로 생계를 이어가야 할 목회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교단이 이러한 문제에도 신학생들의 정원을 조정하지 않고 계속 목회자들을 양성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목회에 전면하면 교회는 자연 성장한다는 주장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이다.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은 목회자의 기본권 충족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학교육을 허락하고 목회자로서 안수를 고시를 거쳐 허락한 교단의 책무라는 관점에서도 목회자 이중직은 긍정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목회자의 의무는 단지 교회의 목회자로서 말씀을 증거하고 교회를 이끌어야한다는 의무만은 아닐 것이다. 목회자는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의무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한 이상 한 가정을 이끌어가야 할 가장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목회의 이중직 문제는 이 두 의무의 상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의무의 상충이 일어나는 경우 어떤 의무가 우선인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목회자들은 교회로부터의 의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목회자에게 교회가 부과하는 의무만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롤스(J. Rawls)는 그 유명한 조건부적 의무(prima facie duty)를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의무의 상충이 일어날 경우 보다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일을 위해 다른 의무를 조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오늘날, 교회와 가정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의무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목회자들이 충분해 고려할 만한 원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은 종교개혁의 전통과도 부합한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루터와 깔뱅이 주장한 만인제사장설에 따른 직업소명설은 애초부터 성직의 영적 우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목회자의 이중직을 금지하는 것은 목회는 영적이며 그 외의 일은 세속적인 일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한 구분이므로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목회자가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만인제사장의 전통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직의 허용은 부차적으로는 목회자로 하여금 그들의 목회와 설교가 현실에 잇닿은 설교와 목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바로 목회자들이 현실의 세계 속에서 실제 부딪힘으로써 성도들의 문제들을 체감하고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될 때 목회와 설교가 현실적 적절성을 담보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울러 일터에서의 정의와도 연결되는데 이중직을 통해 목회자들이 직업현장에 직접 들어가게 될 때 일터에서의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직접 사업을 운영할 경우 세상과의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선교지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책임윤리적 관점에서의 대안

 

이중직의 법적인 허용은 이미 이중직을 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결과이며 이로써 교단법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목회자라는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주고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교회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주며, 동시에 21세기 새로운 목회모델이라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교회의 직제가 가진 질서의 안정성, 또한 목회자의 목회의 책임성과 교회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목회 이중직을 허용하는 상황을 예상하면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논의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대안들

 

이중직의 문제를 성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이를 위해 선결적으로 해결해야 할 신학적 논의들을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목회란 무엇인가그리고 목회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변화 속에서 목회와 목회론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논의 없이는 이러한 이중직의 문제는 경제적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중직에 대한 논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이중직이 논의되어야 한다면 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각주:1] 신학적인 이유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문제,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보다 현실적인 접근방법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중직이 한국교회 목회모델의 한 모델로 인정된다 할지라도 이중직 목회자의 윤리적, 목회적 책무를 담보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연대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만약 이중직의 문제를 허용한다면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목회자로서 탁월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 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감독방안도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미국교회에서는 교회개척과 관련하여 이중직이 좀 더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 북미장로교(PCUSA)는 자비량 사역과 관련해 세금, 법률적 이슈들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작은 교회의 사역 방법으로 이 자비량 목회를 권하고 있는 상황이다.[각주:2] 

미국장로교(PCA) 교단도 이중직 목회를 교회 개척의 매우 중요한 전략으로 보면서 교회 개척의 초기 모델로 이중직을 추천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중직으로 시작하지만 점진적으로 전임 사역으로 가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각주:3] 복음언약교회(Evangelical Covenant Church, ECC)의 경우 이중직 목사 자격증(bi-vocational ministry license)을 발급한다. 이것은 세속직업을 가지고 목회하는 이들에 대해 교단 차원에서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 자격증은 1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복음을 설교하거나 목회 리더십을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자격증 신청과 갱신을 위해서는 4가지가 요구된다.

 

첫째 이중직에 대한 네 권의 필독서를 읽고 매 해마다 독서보고서를 제출한다. ECC는 목회학, 성서신학 및 조직신학, 교회사, 선교학 이 네 분야와 관련된 필독서 목록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자격증을 받은 후 2년 안에 교단의 목회 탁월성 직무 교육을 받는다. 셋째, 매년 목회 활동에 대한 정기 보고서를 노회에 제출한다. 넷째, 목회자 보고서, 세례 간증문, 범죄 기록 확인서, 신앙 고백문을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들의 지속적인 훈련과 성장을 돕고 신뢰성을 부여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다.[각주:4]

 

재정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교단은 이중직 문제를 눈여겨보면서 총회에 소속된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시작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목회자 가정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교회 역시 적극적으로 목회자 가족의 재정 상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도들은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하는 것을 당연시 하지 않고 빨리 이중직을 벗어나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중직의 허용은 신학교의 커리큘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학교의 교과과정에 이중직을 수행할 수 있는 직업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관련된 다양한 점이 교육의 과정 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런 모든 논의와 대안은 교단(총회/노회/신학교), 지교회, 목회자 개인적 차원의 책임윤리적 관점에서 함께 모색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마침)


[관련기사]

- [임성빈의 문화칼럼]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1부 현실과 신학적 근거 

이중직 목회자에게 필요한 생각의 전환 3가지

- 2015년 문화선교트렌드




  1. 이중직에 대한 논의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무임목사, 기관목사, 미자립교회의 목사, 전도 목사, 선교 목사의 이중직 등 다양한 상황에서의 이중직 문제도 별도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
  2. 오종향, “미국교회의 이중직 목회 현황,” 『목회와 신학』 (서울: 두란노, 2014년 4월호), 100쪽. [본문으로]
  3. 위의 글, 101쪽. [본문으로]
  4. 같은 책, 같은 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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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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