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





진정한 두려움을 주는 예수님의 4가지 가르침



# 최근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간증과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주장하며 올해 12월 한반도 전쟁설을 '예언'하는 홍혜선 전도사의 동영상이 페이스북과 유투브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세월호 사건도 자신의 예언이 맞았을 뿐 아니라 촛불집회, 국방부 등에 자리한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며 땅굴을 서둘러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12월 전쟁을 대비해 준비한 '노아의 방주'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수십 명에 달하며, 이미 한국을 떠난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을 정도.(관련동영상뿐만 아니다. 예비역 공군 소장인 한성주 씨가 분당의 한 교회에서 한 간증에서 북한 땅굴로 인한 남침 위협을 말하는 등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이야기로 국민들과 기독교인들의 불안심리를 조장하고 있다.(관련동영상)


UCLA의 옥성득 교수는 40년을 한 세대 단위로 설정하고, 민족성과 근대성의 관점에서 한국 개신교 역사를 구분한다. 1세대(1884-1924)는 양자를 결합하여 민족의 희망으로 급성장한 시기, 2세대(1925-1964)는 양자의 상실로 위기에 처한 시기, 3세대(1965-2004)는 다시 양자를 결합하여 민주화와 통일, 경제 성장에 기여한 시기(제2의 급성장기), 그리고 현 시점인 4세대(2005-)는 민족과 사회에 발언권을 상실한 시기로서 제2의 위기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1 위기의 시대인 1920년대에 예언운동과 종말론이 활발했던 것에 비견할 때 작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반기독교운동이나 불안정한 사회 정황 속에서 종북몰이와 극우적 기독교 신앙이 결합하여 '전쟁설'과 '땅굴'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기이한 복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두려움으로 다가와야 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직통계시를 이야기하며 불안심리를 조성하는 영적 체험이나 예언이 아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구주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죽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그분의 사랑의 삶을 따라살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껴야 한다. 

이에 Mark Osler가 제안하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두려움을 주는 구절들(원제 The 5 Scariest Teachings of Jesus, 원문)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좇기로 한 제자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얼마나 이 말씀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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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물론, 비판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안 할 때도 분명 더 많지만 말이다. 실제로, 다양한 기독교 분파나 그룹들 간에도 그들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정의 내리기 전에 누구를, 무엇을 판단하고 있는 지를 먼저 따지기도 한다. 인간인 우리가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3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누가복음 6:20-24)

번영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반대로 이해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들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교회 같은 비영리 기관은 부자들의 헌금과 후원을 의지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실태이기도 하다. 우리의 문화는 가난보다는 부유함을 갈망하게 하고, 교회는 이런 문화를 제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태복음 10:34-36)

우리는 우리의 믿음생활을 통해 가정을 연합시키고 가족중심적인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길 원하지만, 예수님은 믿음은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렇지만, 여느 말씀보다도 분명한 말씀이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족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삶을 약속하신다. 예수님 또한 그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부인하시고 따르던 제자들을 형제 자매라 부르셨다. 이 부분은 애매하거나 가상적으로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제로 가족을 모두 등지고 예수님을 따랐다. 베드로는 결혼을 했었는데 그의 부인은 3년동안 베드로가 가족과 직업을 관두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 시련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1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복음 5:38-39)

이 말씀은 특별히 법조계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임무와 역할에 많은 도전을 준다. 법의 집행은 악한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인데 예수님의 말씀은 범죄자 응보를 통한 법의 심판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위의 말씀대로만 산다면 이 사회에 법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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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때로 말씀하셨다.(눅 21) 이 일이 있기 전에 일어나는 하늘의 징조들은 악인을 두렵게 하기 위한 것이며(사 19:16; 렘 4:9)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렘 10:2) 오직 소망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흉내내는 사람들의 예언, 구체적인 시점을 언급하며 불안함을 조성하는 위협과 전쟁설이 아니다.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전쟁의 여부에 따라 '나 자신'만 살겠다며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회개하며 '우리'를 위해 재를 뒤집어쓰며 돌이키려는 모습,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위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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