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의 도전과 한국 교회의 응전-1] 뉴미디어가 만들어가는 현재와 미래(1)



유튜브, 넷플릭스, 1인 크리에이터 등 갑작스레 낯선 단어들이 미디어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5위가 유튜버라지요. 어느새 4차 산업혁명이 일상 가운데 다가온 지금, 한국교회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에 대한 기획 연재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 문화선교연구원 편집부

<연재 순서>

1회 뉴미디어가 만들어가는 현재와 미래(1)

2회 뉴미디어가 만들어가는 현재와 미래(2)

3회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라본 뉴미디어

4회 뉴미디어와 선교 프레임의 변화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스페인 남부도시 그라나다. 한 남자가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콘택트렌즈를 꺼내 각막에 붙이자 순간 그의 눈앞에 진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성벽 위에서 느닷없이 화살이 날아오고 중세시대의 갑옷을 입은 기사가 큰 칼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달려든다. 남자는 당황하지만 이내 자신의 오른 손에 거대한 검이 쥐어져 있다는 걸 깨닫고 그 기사와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인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한 오락채널의 드라마 속 장면이다.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경험하게 해주는 마법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요즘 한창 상용화가 진행 중인 ‘스마트 렌즈’다. 이 신박한 물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 중 지적(知的)으로 가장 뛰어나다.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수많은 결함을 지닌 존재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려는 과정에서 고안된 것이 바로 미디어(media)다. 캐나다의 미디어이론가이자 문화연구자인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extension)’으로 규정한다. 쉽게 말해 텔레비전은 눈의 연장, 라디오는 귀의 연장, 자동차는 다리의 연장, 크레인은 팔의 연장, 컴퓨터는 두뇌의 연장이라는 식이다. 맥루한은 이걸 미디어의 ‘의족 명제(prothesenthese)’라 이름 붙였다. 몸에 미디어라는 의족(義足)을 부착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신체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인류사는 미디어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창조된 인간에게 신 혹은 다른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욕구는 ‘본능’이었고 이를 위해 오랜 시간 다양한 미디어를 고안하고 발전시켜왔다. 구두 커뮤니케이션(언어), 문자 커뮤니케이션(글자)의 시기를 거쳐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책의 대량 제작과 보급(인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그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1895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마르코니는 여러 기술을 조합해 실용화할 수 있는 무선통신 장치를 완성했고 이를 기점으로 전자매체(electronic media)를 활용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어진 컴퓨터의 발명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결정적 분기점이 된다.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은 그 이전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데 그 중심엔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interaction)’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매체를 의미하는 ‘뉴(new)’미디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구두 커뮤니케이션 시기에는 정보의 기록과 보존을 가능케 해준 알파벳이 뉴미디어였을 테고, 중세의 금속활자와 근대의 무선통신 장치도 당시 뉴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했다. 안으로 눈을 돌리면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도 15세기 조선의 뉴미디어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논의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뉴미디어와 그 이전의 뉴미디어는 앞서 언급한 상호작용성이라는 개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후자가 일방향적(one-way) 소통만 가능했던 것에 비해 전자는 쌍방향적(two-way) 특성을 갖는데 그 차이는 비단 글자 한 개가 다르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쌍방향적 특성을 핵심으로 하는 미디어의 상호작용적 기능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거의 완전한 의미에서 타인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미디어의 등장으로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오랜 한계, 즉 시공간의 제약마저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미디어란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하며, 시공간적 제약 없이 융복합 콘텐츠를 제공하는 똑똑한 매체”로 정의할 수 있는데 ▲개방형 ▲실감형 ▲참여형 ▲개인형 ▲감성형 등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이 중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개념은 바로 실감형이다. 실감형이란 말 그대로 어떤 미디어가 얼마나 실재(reality)를 실제(realistic)처럼 재현해낼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실감 미디어(realitic media)는 몰입감(immersion)과 현장감(presence)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현장의 모든 감각정보를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매체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품질의 시청각 정보는 물론 촉감 등 다감각 정보의 생성, 처리, 저장, 변환, 전송, 재편 등에 관한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바로 ‘무매개성(immediacy)’과 ‘하이퍼매개성(hypermediacy)’이다. 다소 생소한 이 두 용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는 그 안에 담긴 함의를 간단하게만 언급하도록 한다. 볼터(Bolter)와 그루신(Grusin)은 「재매개(Remediation)」라는 저서에서 이 두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실감형 미디어의 속성을 잘 표현해준다. 쉽게 말해 무(無)매개성은 사용자가 자신이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몰입감과 현장감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며, 하이퍼매개성이란 그 반대로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점을 더욱 또렷이 인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미디어의 역설 중 하나는 미디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미디어는 그 존재감을 스스로 지우려고 한다는 것인데,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매개성이 극대화된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실제로는 기계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의 매트릭스 속에서 기계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배터리같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의 머릿속 세계는 컴퓨터 엔지니어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발가벗긴 채 수많은 유리수조 중 하나에 갇혀 있는 그의 머리 뒤편에는 매트릭스의 거대한 네트워크와 연결된 케이블이 꽂혀 있고 이를 통해 그는 완벽하게 실제화된 가상현실을 마치 진짜 현실인 것처럼 인식한다. 주인공 네오는 그 자신이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는 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즉 완전한 무매개성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편 하이퍼매개성 개념은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현실 위에 가상의 세계를 겹쳐놓는 증강현실은 이 글의 모두에서 언급한 드라마 속 모습과 유사하다. 현재의 그라나다 거리에 수백 년 전 중세시대의 인물과 사물을 배치함으로써 사용자에게 현실과 가상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마치 자신이 전지적 시점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몰입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 

무매개성과 하이퍼매개성, 그리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아직은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머잖은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미디어를 통해 이용하게 될 콘텐츠의 일반적 특성이 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스마트미디어로 대표되는 현재의 뉴미디어는 상호작용성과 편재성(ubiquity), 실감형을 기반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미디어의 개념과 발전사를 되짚어본 것은 인류사에 미치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논의를 통해 미디어, 그 중에서도 최근 몇 년 새 등장한 뉴미디어들이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 속 일상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지에 대해 천착하고자 한다. 또한 그러한 변화가 뉴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도전에 응전해야 하는 한국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비단 고전(古典)에만 머무는 방법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 계속)


박웅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교 명문 사립대학인 위튼 칼리지(Wheaton College)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문화연구) 전공으로 석사(MA)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을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미디어심리학(Media Psychology)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중앙대학교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강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방송 출연, 칼럼 게재 등 다양한 대중문화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로 <대중문화 비평, 한 권으로 끝내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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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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