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위한 복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베스트셀러인 시대에 산다는 것



최근 베스트셀러 중에 이목을 끄는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2018)이다. 우울증에 걸린 저자의 정신과 치료 과정이 담긴 책이라 그리 유쾌하거나 밝지 아닌데, 그렇다고 깊은 의미나 풍성한 정보가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 직판이나 동네서점을 중심으로만 알음알음 판매가 되던 독립출판물이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8월 첫째 주~9월 둘째 주, 9월 넷째 주~10월 첫째 주, 교보문고 산정) 이 무거우면서도 엉뚱한 제목의 책이 이만큼 인기를 얻게 된 것은 함의하는 바가 있다. 그만큼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이 와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다시 말해, 일상에서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 대다수가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멀쩡해 보이지만 때때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마음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고, 그만큼 위로 받고 싶은 자조어린 마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남의 시선이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울과 현실을 극복하려 애쓰는 대신 오롯이 나의 마음을 가장 아끼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으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저자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공감, 연대감을 느꼈다.


더 이상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한때 ‘노오오오오력’이나 헬조선, 금수저와 흙수저, 그리고 n포 세대 등의 표현이 유행처럼 퍼졌었다. 이 말들은 무한경쟁의 압박과 삶의 부조리, 다양한 폭력적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커녕, 노력 이외의 것들(부모의 재력, 인맥 등)이 없이는 성공을 담보해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대변해준다. 돌이켜보면, 지금으로부터 30년만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 당시 베스트셀러(1989-1990, 교보문고 산정)는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욕망의 주체로서 개인이 등장하고 세계화 열풍이 일었던 90년대를 여는 이 책은, 특히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진취적이고 고무적이었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출간된 미국 여성작가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 『소공녀』는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낸  주인공 사라 크루(Sara Crewe)의 성장담이다.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이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하녀로 전락하게 되지만, 냉대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특유의 상상력과 곧은 심성으로 역경을 견디고 다시 부유함 - 이른바 성공 - 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반면, 2018년판 한국 여성감독 전고운의 영화 <소공녀>는 제목은 같지만 내용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프랜시스 버넷의 작품 원제가 A Little Princess, 직역해서 “한 작은 공주”라면, 전고운 감독의 작품의 영어제목은 Microhabitat, “작은 생명체들의 서식처(미소서식환경)”이니 영화 <소공녀>에 대해 읊기도 전에 두 작품 간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타협과 소확행

영화 <소공녀>는 취향이 확고한 여성 청년 미소(이솜 역)의 이야기다. 그녀는 하루 일당 4만5천 원의 3년차 가사 도우미이고, 가족이 없는 대신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다. 난방도 잘 되지 않는 방에 살다가 날로 높아지는 물가에, 하루 한 모금의 담배, 한 잔의 위스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포기하는 대신 집을 포기한다. 소설 『소공녀』라면, 결말에 이르러 이런 누추한 신세를 벗어 버리게 되겠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던 주인공은 결국 홀로 한강변에 텐트를 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는 삶을 택한다. 어쩌면 이상만 좇는 미소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미소의 친구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겠지만, 동시에 영화 <소공녀>의 미소는 오늘날 ‘(넓은 평수의 아파트와 대기업 직장과 같이) 크고 확실한 행복’에 닿을 수 없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욕망하는 한국 청년세대와 닿아있다. 여기서 영화 <소공녀>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오늘날 성공을 지향하다 지쳐 행복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열망과 만난다.


우리가 전할 메시지는 무엇인가

팀 켈러는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가 사계절을 거친다고 보았다. 초기 기독교 문화의 시기는 봄, 교회가 사람들에게 높이 인정받고 문화 생산의 중심부에 있는 시기는 여름, 점점 주변부가 되어가는 시기는 가을, 열매가 거의 없는 시기가 겨울이다. 130년 전 소설 『소공녀』 시대에 복음은, 고난을 인내하며 견디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30년 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시대에 성장 담론으로 외적 부흥을 이루었던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그 일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가을의 계절을 지나는 중인 한국교회가 영화 <소공녀>와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시대에 전해야 할 복음은 어떠해야 할까? 변화하는 시대에 불변하는 복음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리처드 니버는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물으며 그에 응답하는 것이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라 하였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오늘의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시선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에 따라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된다.

김지혜 목사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문화비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대원에 오면서 신학함 이전과 이후 삶의 단절을 느꼈고, 이를 통합하고자 문화와 신학의 만남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박사과정 중이다. 문화신학, 대중문화, 공공성, 타자 등에 관심이 있다.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문화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