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최저임금 문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한편에서는 최저임금이 빈자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얘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최저임금 때문에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쉬운 산수 문제를 풀 듯 경제가 하나의 정책으로 모든 것이 일순간에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경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있어서 해결하기가 쉽지는 않다.

지금 최저임금이 논의의 중심에 있지만, 법으로 제정하고 임금의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임금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최저임금과 함께 적정임금, 생활임금 등이 논의된다. 최저임금은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의 임금을 말한다. 말 그대로 최저생활이다.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 한 인간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적정임금은 “근로자와 그 가족이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임금수준”을 의미한다. 생활임금은 법으로 정하는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금액으로 노동빈곤층에 속한 노동자와 그 가족이 빈곤상태에서 벗어나 생활할 정도의 임금을 의미한다.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제도는 적정임금이나 생활임금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적정임금이나 생활임금을 올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인간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임금실태를 분석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대졸이상보다는 고졸 이하 근로자들의 임금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사회적 약자들에 속하는 비정규직, 여성, 고졸이하의 사회구성원들이 혜택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은 그 시작부터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라고 준엄하게 명령하며 구체적으로 고아, 과부, 나그네에 대한 도움을 명시했다. 부모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남편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 자신의 터전을 잃고 다른 문화에 들어와서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외국인들, 이들은 하나님께서 소외되지 않도록 돌보라고 한 대상들이다. 최저임금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나은 혜택을 준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방향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정교해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반면, 단순한 노동을 대체할 기계들이 등장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 자동화된 기계가 더 많은 영역으로 확대되면, 단순 노동의 필요성은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단순 노동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회 최하층의 임금이 더 낮아질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구직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 더 낮은 임금을 제시해도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가 없다면 기업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제시하며 구인을 할 유혹에 빠지게 되고 이 유혹은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폭력성을 더 심화시킨다. 국가나 제3자가 개입해서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약자들에게 잔인한 행보를 지속할 것이다. 그 행보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 최저임금제이다.

신자유주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주장하며 기업이 성장하면 부가 위로부터 아래로 흘러내려서 빈곤문제나 양극화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지속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혜택을 받기는커녕 빈부 차는 더 깊어지고 그 격차가 세대를 넘어서서 견고하게 자리 잡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소득의 상층부에 속하는 사람들의 부는 점점 더 늘어가는 반면 경제적 약자의 수입은 줄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낙수효과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이 낙수효과의 허상을 벗기고 실제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할 정책과 방안들이 필요하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혹은 임금주도성장을 제시하는 이유도 위로부터 흘러내리는 순환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건강하게 자리잡고 위로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 한 축이 최저임금제이다. 최저임금제는 임금주도성장을 진행시키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최저임금제를 논의하면서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제도가 사회에서 가장 약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사회에는 경제적으로 제일 약자인 사람들, 그보다 덜 한 사람들, 그리고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 중상위, 상위, 최상위 등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그 다양한 층위 중 경제적으로 가장 약자인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최저임금제인 만큼 그 보장과 확대를 위해서 모든 층위의 사람들이 함께 지지하고 노력해야 한다. 차상위계층의 경우 최소임금이 늘어나는 만큼 자신들에게도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길 바랄 것이다. 혹은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영세업자의 경우는 최저임금 인상이 자신의 사업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이해득실에 앞서서 최저임금제의 핵심은 다름 아닌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97년 IMF 위기가 닥쳤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어 길거리로 내 몰렸다. 당시 위기를 지나고 난 후에 이뤄진 연구결과에 따르면, 해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기업들이 당시 분위기에 편승해서 혹은 그 분위기를 앞세워서 해고를 했다고 한다. 경제적인 위기 시에 가장 쉽게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최하위에 속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지금 최저임금의 논의가 경제논리를 앞세워서 최하위에 속한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어떤 제도이든 누군가는 상대적인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그 희생이 사회의 최약자들에게 강요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것이 신구약을 관통하는 약자보호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에 대응하는 우리 시대의 응답이 될 것이다.


곽호철 박사(계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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