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책 <분노와 용서>(Anger and Forgiveness)를 읽고




오늘날 가장 극단적인 대우를 받는 개념 중에 하나는 분노다. 한편에서는 사회의 각종 불의와 모순에 대해 외면하지 말고 저항하라며 분노를 선두에 놓고 따르라 외친다.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파괴와 사회분열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분노를 내려놓으라고 한다. 어느 편에 서든지 분노는 구호 한 번으로 해결될 수 없는, 우리사회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연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마사 누스바움의 ‘분노와 용서’는 그런 의미에서 분노에 대한 풍부하고도 섬세한 성찰과 대안을 제시해 줄 좋은 가이드라 여겨진다. 


우선 누스바움은 분노를 고통과 쾌감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 복잡한 감정이라는 전제 하에 출발한다. 분노가 부당한 피해에 대한 반응이라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기에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피해에 대해서만 분노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 지구적인 사안에 대해 공분할 때조차도 우리 자신의 관심 범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해에 복수라는 형태의 되갚음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출발점부터 틀렸음을 지적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로 인해 자신의 지위가 격하(down-ranking)되었다고 여겨 가해자에게 모욕과 피해를 주는 방식의 행동과 ‘눈에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인과응보식 처벌이 근원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친밀한 관계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나 상사 또는 가게에서 만난 점원 등과 같이 친밀하진 않지만, 만남이 있는 중간 영역, 그리고 보다 광범위하게 공적관계인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본다. 분노표출과 같은 방식은 일시적, 표면적으로는 피해상황에 대한 위로와 도움이 된다고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과거에 매이게 되고, 피해자와 앞으로 발생할 지도 모를 잠재적 피해자를 예방하는 미래의 행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원초적이고 당연한 듯이 보였던 그간의 분노를 버리고,  제 3의 방식으로 ‘이행’할 것을 주장한다. ‘이행’이란 분노 대신 복지를 고민하는 미래지향적 생각, 연민 어린 희망으로 건강하게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간디의 ‘비폭력’과 같은 방식인데, ‘비폭력’이 표면적인 것이라면, 누스바움은 ‘비-분노’상태라는 내면의 적극적인 분노거부까지도 요청한다.  ‘비-분노’의 예로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을 든다. 인종차별주의가 당연시 되는 현상과 그 일을 자행하는 백인들 자체에 분노하는 대신, 킹은 모두를 100년 전 이루어진 노예해방선언을 여전히 이루지 않고 있는 채무불이행자로 선언했다. 피해를 당한 흑인들을 ‘피해’라는 범주에 넣고 서둘러 용서하라거나 백인들에게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채무불이행을 이행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모든 사람이 정의와 영예로운 의무를 함께 추구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흑인과 백인을 하나로 엮어주며 평등과 자유, 형제애에 대한 꿈을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피해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누스바움이 말하는 ‘이행’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행의 과정은 용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누스바움은 용서의 다양한 층위를 유대교, 기독교, 일반 도덕의 전통에서 탐구한다. 그리고 각각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교환적 용서와 무조건적인 용서에 담긴 문제점을 고찰하는데, 모든 문제를 서열과 상대적 지위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누스바움이 주장하는 ‘이행’에 가장 근접한 모습으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와 아버지의 비유가 나온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나 집 나간 아들에 대한 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앞으로의 삶 자체에만 초점을 두고 잔치와 회복을 이룬 미래지향적인 행위가 두 사람 사이의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본서는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해갈 수 있는 공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 법철학자답게 누스바움은 모든 법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 전체의 시각을 놓치지 않고 분노와 용서에 대한 재정의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입장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충분히 살펴보고 역사적 실례를 적극적으로 가져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렇다고 저자를 중립지대에 놓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때문에 독자는 충분히 저자의 논지 속에서 독자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의 빈틈을 채우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스스로 연구해 볼 수 있는 풍부한 레퍼런스를 얻게 된다. 


본서가 제시하는 ‘비-분노’의 길은 분명 쉬운 길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최선으로 삼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비록 일상과 역사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상처받고 취약함에 노출된 어린 아이와 같지만,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사회적 토대와 제도는 성숙을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 자신의 한계 속에서 과거로 퇴행하지 말고 더 나은 사회와 역사를 만들어 갈 상상력을 가지고 오늘도 이 땅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사회적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 마사 C. 누스바움

194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로서 뉴욕대학교에서 연극학과 서양고전학으로 학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고전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학교 에른스트 프룬드 법윤리학 종신교수 겸 철학부 교수이다.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등과 함께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선정되었다. 『사랑의 지식loves’s Knowledge』,『인간다움의 함양Cultivating Humanity』, 『시적 정의Poetic Justice』, 『혐오에서 인류애로From Disgust to Humanity』,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Not for Profit』,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 『정의의 최전선Frontiers of Justice』 등 수많은 책을 썼다. 


필자 소개 :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로 섬기고 있으며, 창조의 정원의 담임목사이다. 팟캐스트 <가스펠 북카페>(바로가기)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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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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