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읽기-막달라 마리아 복음을 새롭게 보다





 

영화 <막달라 마리아>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 준 <라이언>(2016)을 통해 미국 감독 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가스 데이비스 감독의 두 번 째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를 포함해서 영화 제작진들의 명단과 그들의 이력을 보면 감독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아 복음서’를 기반으로 하고 성경의 이야기를 보충으로 해서 성경 인물로서 오랫동안 오해되어 온 막달라 마리아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곧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실제로 누구였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성경에 밝은 사람들이라면 막달라 마리아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곱 귀신에 시달리다가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은 여자 혹은 창녀일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12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며 자신의 재물로 예수님을 섬겼던 여성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눅8:1~3). 부활 후에 예수님이 가장 먼저 자신을 보여줄 정도로 예수님과 각별한 관계에 있었다(막16:1, 9).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와 제자들은 모두 도망하는 상태에서도 다른 여인 몇 명과 함께 끝까지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무덤까지 따라갔다.(마27:56, 61), 장사된 후에는 시신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고(막16:1, 눅23:55-56), 요한 및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눅24:1~10). 특히 성경에는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그녀는 종종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춘 “죄를 지은 한 여자”(눅7:37~50)와 동일시되었다. 영화 말미에 자막을 통해 소개되었듯이, 16세기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규정한 이유도 “죄를 지은 한 여자”와 막달라 마리아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교회는 오랫동안 예수님의 제자로서나 부활의 증인으로서 자격에서 그녀를 배제시켰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사실조차도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 되었다. 그러다 2016년 교황청은 그녀를 사도 중의 사도로 복권시켰다.

이러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즈음해서 그녀가 실제로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영화는 대중적인 관심에 부응하여 제작되었다. 무엇보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은 작가 필리파 고슬렛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다분히 해체주의적이고 페미니즘의 배경에서 작업을 진행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던 사람들, 곧 여성 제자의 목소리를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때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시나리오에 크게 반영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은 외경으로 알려진 ‘마리아 복음’에 기초한다. 이 외경은 주후 16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지주의적인 작품이다. 이것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부분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남녀 제자들과의 대화로 이루어졌고, 다른 한 부분은 예수님에 관한 마리아의 환상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마리아 복음서를 영지주의적인 작품으로 추정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를 의미하는지 계속 논쟁 중에 있으나, 마리아의 환상을 다루는 부분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베드로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계시를 막달라 마리아가 환상을 통해 받고, 베드로를 포함한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준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 교황을 인정하지 않은 가톨릭교회는 베드로가 여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좋아할 리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는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와는 다른 이미지를 구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많다. 무엇보다도 죄가 있는 여자 혹은 창녀 이미지에서 그녀를 해방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녀의 종교성 혹은 영성에 집중하여 그녀를 재구성하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녀와 예수님 사이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관계이며 또한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과의 갈등 관계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여러 장면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예수님이 그녀를 어떻게 신뢰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마지막 만찬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오른 쪽 옆에 있는 여성 이미지의 존재는 여성적인 면모를 가진 사도 요한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외경을 바탕으로 그림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당시 예수님의 제자로 여겨진 막달라 마리아로 보는데, 영화에서는 이 관점을 따르고 있다. 성경의 권위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바로 이런 장면에서 심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일단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인지 영화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스포일러 있음)
막달라 마리아는 가족에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갖는 여성이었다. 친족들에게 강한 의지처가 되었고,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로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을 맡아 할 정도로 그리고 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이 소개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를 거부하면서-단지 남자가 싫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로-그녀는 가족에게 치욕을 안겨준 사람으로 여김을 받는다. 그러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고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그를 따라 나선다.
그녀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종종 그녀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룟 유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자신의 속내를 그녀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내비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감독은 이런 장면을 통해 그녀의 존재감이 남성들 중심의 그룹에서도 결코 작지 않았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예수님마저도 고난의 여정에서 그녀에게서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기댄다고 여겨질 정도의 장면 연출이 있다.
특히 주목할 일은 예수님을 대하는 제자들의 태도나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각이 막달라 마리아와는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룟 유다는 다소 극단적인 한 사례일 뿐이며, 다른 제자들 역시 기대와 욕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나 그를 보는 시각은 달랐다. 그녀가 예수님을 따랐던 계기 자체가 제자들과 달랐다. 제자들처럼 가족을 두고 따랐다기보다는 당시 여성이 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식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해방을 추구하는 이미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에게서 세상의 어떠한 영광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졌던 가룟 유다와의 대화에서나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막달라 마리아는 오히려 예수님의 연약함을 돌보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또한 그가 행하신 일들을 다른 여성들에게 전했다. 기적에 관심을 갖고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관심을 보인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그녀의 관심은 예수님 자신에게 있음을 드러낸다. 이것이 목적 지향적인 남성과 관계 지향적인 여성의 차이일지 모르지만, 십자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기대했다기보다는 오직 예수님 자신 및 그분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따랐던 남성 제자들은 목표가 좌절되었다고 여겨 모두 십자가 앞에서 도망쳤을 뿐 아니라 또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증거를 믿지 못했던 것에 비해,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을 뿐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이 스스로를 처음으로 보여주신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기록되었다. 물론 부활하신 주님은 나중에 다른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시어 부활 신앙을 갖게 하셨기에 그녀의 증인으로 부활 신앙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떨면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당시에 유일하게 무덤 곁을 떠나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모두가 믿지 못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당시 증거 능력을 갖지 못하는 여인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신 걸까? 게다가 마가복음은 그녀를 일곱 귀신이 들려 예수님에 의해 치료를 받고 회복된 여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 여자의 증거를 대체 누가 믿을 수 있을 건가? 그러나 하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게 하셨다. 부활의 증거 능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음을 나타내려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여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명단에서 배제되어야 할 존재이기보다 오히려 여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더욱 기억해야 할 존재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능력이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여성 제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이 영화를 계기로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워낙 오랫동안 폄하되었기 때문에 제자리를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게다가 개신교는 정경이 아닌 외경인 ‘마리아 복음서’를 근거로 성경의 내용을 첨삭한 사실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전에 개봉한 <노아>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냉랭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어떤 내용을 근거로 만들어졌든 또 막달라 마리아가 실제로 누구이든 영화에서 표현된 바대로,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에서 그녀가 남성 제자들과 차이를 보여준 사실에 천착하여 그녀를 재조명할 필요는 있다. 오늘 우리에게 영화 <막달라 마리아>가 의미 있는 까닭은 사회적으로 작은 자로 취급당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복음을 새롭게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여 영화를 처음부터 폄하하지 말고, 부디 복음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여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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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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