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좌담회 - SBNR(Spirituality But Not Religious), 청년세대의 종교성 분석과 교회공동체






‘영적이긴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성향의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소위 SBNR이라고 불리는 이 집단은 후기세속화적 신앙 현상을 드러내는데, 종교 서적 읽기, 명상, 봉사, 환경보호 활동 등을 통해 종교적, 영성적 생활을 영위하지만 종교집단에 귀속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종교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왜 교회를 떠나가는지, 또한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영적 생활을 영위해 가는지를 함께 알아보고 교회가 나가야할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에 본 문화선교연구원은 이러한 과제에 대한 좌담회를 마련하여 SBNR이 지닌 종교·정치·사회적 의미를 분석하고 한국교회의 과제를 살펴봤다. 좌담회의 1부는 송재룡 교수의 “종교 없음(Religious Nones)과 유교적 사실(Confucian facts)의 재인식”이라는 발표로 진행되었다. 한국적 상황에서 인식할 수 있는 종교 없음의 현상을 유교적 사실과 연관시키는 유의미한 분석을 제공했다. 2부는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일시: 2018년 2월 27일(화) 14:00 @필름포럼

발제자: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토론자: 이주형 목사(숭실대), 김혁수 목사(IVF 북서울지방회 대표간사), 정인곤 사무국장(기독청년아카데미), 조기성 사무국장(기독경영연구원),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 백광훈 목사(문화선교연구원장),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심수빈 전도사(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1부 ‘종교 없음(Religious Nones)’과 ‘유교적 사실(Confucian facts)’의 재인식

송재룡(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1. ‘종교 없음’ 현황

통계청에서 발표한 종교인구조사(2015)를 보면 무종교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2007년 이후로 종교인의 추세는 떨어지고, 무종교인의 추세는 늘어가고 있는데 특히 청년연령대의 무종교인의 비중이 점증하고 있다.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2. 한국의 ‘종교 없음’ 현상 – 왜 문제인가?

이러한 한국적 종교 없음의 정체와 본질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기존의 서구적 의미의 ‘spiritual turn’, 즉 SBNR 또는 ‘Believing without Belonging’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교적 마음의 습속(Confucian habits of the heart)’을 반영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정서적 경향성’의 측면에서 ‘종교 없음’ 현상을 새롭게 성찰하고 정의해야 한다.


3. 한국사회와 유교: ‘유교적 사실’

1392년에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도입된 유교는 한국의 국가 통치 이념 및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500년간 조선 사회의 지배적 윤리도덕 지침으로 작용하였다. 2015년 오늘에 이르러서 유교의 종교 인구는 0.2%(76,000명)로 종교로서의 유교가 종언되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유교의 집합적 경향성이 여전히 변함없이 작동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통해 유교의 여전한 영향력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유교적 경향성은 ‘효’나 ‘충’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중심의 질서 구조, 가부장주의 문화, 혈족적 가족주의로 나타나며 유사가족주의로서의 집단주의 형성은 지역주의, 집단주의, 학연, 사연, 군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유교가 가진 우리주의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주의로 나타나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무도덕적 저신뢰사회의 집단적 경향성이 지속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유교의 오륜이나 예에 대한 강조는 차별적 위계질서의 구조화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갑을 관계’의 역학 기제는 바로 이와 같은 차별적 위계질서의 집단적 경향성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과거제도를 통한 신분의 상승, 입신양명에의 열망, 입시 과열 등의 문제도 역시 유교가 가진 소수엘리트주의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교적 사실’에 대하여 사물로 인식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유교적 경향성’이 객관적 사실로서 개인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힘으로 구체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교적 경향성의 부정적 영향력은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이를 도표로 제시하였다.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자료제공= 송재룡 교수(경희대 사회학과,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


4. 요약 및 논의

요약하자면 무종교인에 대하여 개념 범주의 분화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제도종교(교회)를 떠난 후 신앙은 버리지 않았으나 이전 제도종교(교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 사람들로 정의한다면, 한국적 종교없음의 현상은 SBNR의 현상의 점증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기저구조에 깔려있는 ‘유교적 경향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청년 무종교인의 증가나 배경에 대한 성찰은 글로벌 변수로 여겨지는 포스트모던 문화, 개인주의, 시장 자본주의 등도 물론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유교변수 즉 교회공동체에 작동하고 있는 유교적 집합경향성들에 대한 부정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교회 주요 의사결정 과정 및 교회활동에서 청년들의 당연한 참여 배제나 소외현상, 또한 교회 공동체 내의 청년신자들과 기성세대 신자들 간의 쌍방향적 민주적 소통의 부재 등이다. 

SBNR 현상을 바라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 곧 이기적이고 원자론적 자아관을 반영하는 유아적 신앙형태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도리어 “no religion”이라는 이러한 영적인 전환점(spiritual turn)이 ‘종교’라는 전통적 개념의 급진적인 변화로 이끌어야 한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종교에 대하여 의미있는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좌담회 2부 주제토론 


백광훈(문화선교연구원장): 문화선교연구원에서는 교회와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들을 주제로 선정하고 좌담회를 통하여 연구 주제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제는 ‘SBNR’이라는 현상을 선정하였습니다. 송재룡 교수님께서 “종교없음과 유교적 사실의 재인식”이라는 주제로 주제 강의를 진행해 주셨는데, 여기에 모여주신 분들의 삶의 맥락이 다양함에 따라 각기 다양한 현상분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석과 생각과 의견들을 통하여 기독교와 사회전반에 주는 대안과 방향성을 찾아나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주형(숭실대 교목):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유학할 당시 성균관대를 나오고 유교를 전공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신학교까지 오게 된 지인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가 말하길 “나는 한국에서 유교가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교회에 그대로 다 살아있더라”하더군요. 그만큼 한국교회와 유교적 경향성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유교가 미치고 있는 부정적 습속에 대해서 매우 동의합니다. 그 중 하나인 집단주의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대안 중에 하나는 ‘집단주의를 극복한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강력한 유교의 습속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위와 같은 유교의 부정적 습속들이 극복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안적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부정적 습속이 자리잡고 있는 제도종교에 몸담고 있다면 결국 또 다시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발제자: 기성 교회의 문제들과 유교적 습속은 정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시끄러웠던 교회세습 문제도 그렇습니다. 목회자를 하면서, 아들이 내 뒤를 잇는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당연히 아들인 목사가 목회를 잘하겠지요.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는 공정한 룰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만 유능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다른 이들도 적절한 사람이 있습니다. 혈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국교회의 상황이 좀 더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백광훈: 사실 청년이탈을 하는 청년들과 유교적 습속이 존재하는 교회 사이의 간극이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갈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가나안 교인문제도 역시 대표적인 SBNR 현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정인곤(기독청년아카데미 사무국장): SBNR 현상이 계속 회자되고 지속되어지는 원인 중에 하나로 유교적 습속이 있다는 발표에 동의합니다. 발표를 통해서 교회에 대해서 느끼는 불편함, 불만감 중에 하나를 짚어주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좀 더 이어서 얘기하자면 가나안 성도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가나안 성도의 문제와 SBNR 문제를 바로 연결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나안 성도 백만, 이백만 이런 통계들은 수치만을 이야기 할 뿐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기청아)는 강의를 개설하고, 홍보하고 수강하고 교육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청년들을 강좌로 안내하고 대화도 나누게 됩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알게 되는 놀라운 일은 기청아 수강생 중에 교회 안ㅠ다니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 중 일부는 교회를 섬기지 않고 선교단체 활동만 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직접적인 이야기의 전말은 그들이 ‘세월호 참사’ 사건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진행되는 모든 과정 중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교회와 함께 공감하고자 했는데 그 사건이 교회에서 소통이 안 된 것이죠. 

저는 SBNR현상이 가나안 교인의 문제라고 바로 연결하기 보다는, 세월호 참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정을 두지 못하고, 혹은 교회에 정만 두고, 자기 영적인 추구를 다른 형태로 풀어나가는 현상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청년들이 어떤 현상으로 자기 추구의 방식이 드러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한국사회에 기반해 구체적인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관련 한 자원봉사 등에서 물어보면, 꽤 많은 기독청년들이 기독교정체성을 가지고 그 일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교회와 소통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들은 봉사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영적인 추구를 충족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도 SBNR 현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발제자: 현상은 없고 통계만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정인곤: SBNR이 있다 하면 가나안 성도 통계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것을 찾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죠.


발제자: 특별히 표출하고 있는 현상이 안 보인다는 건가요?


심수빈(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제가 이해한 바로는 ‘not religious’ 즉 제도 종교를 떠나는 현상에 대한 것은 가나안 성도 통계로 알 수 있는데 반해 ‘but spirituality’ 라는 영적 추구에 대한 구체적인 현상은 그 통계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청년들의 영적 추구 방향성으로부터 이 현상의 분석을 시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송재룡: 사실 그런 것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이 안 되었어요. 좀 더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교회를 나간다고 할 때는 소속 여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속과 더불어서 헌신의 정도까지도 함께 봐야할 것이고, 또 더 나아가서 교리적 지식이나 정도까지도 조사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더욱 자세하게 현상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그런 식의 구체적인 연구는 진행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혁수(IVF 북서울지방회 대표간사): 사실 처음 1부의 발표제목을 들었을 때 오늘날 이 시점에서 유교를 다시 다룬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문화 현상 저변에 이러한 유교적 경향성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쭉 말씀 들어보니까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유교가 한국교회나 종교의 위계질서에 중요한 기저가 되었다는 것에 동의가 됩니다. 

저는 선교단체 간사를 하면서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선교단체로 오는 많은 청년들이 교회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공동체를 선교단체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확실히 교회의 위계질서나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한편 이 문제를 반공 이데올로기 문제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아직도 반공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고, 청년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개인의 자유가 확대된 상태입니다. 그러한 정치적인 배제에 불통을 느낀 것이라고도 보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군대문화와 같은 강력한 조직 위계질서가 교회에 만연하고 그러한 분위기 때문에 청년들이 선교단체나 기독청년아카데미 등 외부 대안적 영성추구로 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교회를 안다니면서 spiritual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청년들이 모여서 나누는 지적 좌담회라든지 기독교 토론회 등의 대안 모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저는 또한 발표 자료들을 보면서 2007년을 기점으로 종교 인구가 감소세에 들어간 것에 대하여 매우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2007년이 의미하는 대체 뭘까 고민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시점이 캠퍼스 선교의 위기를 느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한 사회적 가설 중 첫 번째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정권이 재집권하게 된 것입니다. 인권의식이 향상되고, 또 그러한 교육을 받은 청년들과 정치기득권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교회 간 갈등이 심화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경제적 문제 즉 현실자본주의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두 번째는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진행했던 7차 교육과정인데요, 당시 사실 이해찬 세대라고 부를 정도로 7차 교육과정의 교육변화는 매우 컸습니다. 그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인 사안은 학생중심의 인권을 강조하고, 교권의 힘을 약화시킨 것입니다. 그 시대 중고등부 시절을 지나며 겪었던 권위에 대한 강한 반감이 영향을 미쳐서 교회의 극심한 교권주의에 반항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극심한 경쟁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면서 먹고사는 문제, 살아가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그 이상의 더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도 큰 영향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김지혜(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2007년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할 주요한 사안으로 ‘아프간 피랍사태’ 즉 샘물교회 사건이 있습니다. 이 때 언론 등 여론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혐오감이 매우 표출되었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기득권에 대한 비판으로 강화되던 기독교의 배타성, 독단적인 성향 등이 더욱 심화되는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기성(기독경영연구원 사무국장): 그 때 세계적으로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2007년을 기점으로 수도권 주변 캠퍼스 IVF가 완만한 하락세를 탔다면 저는 그때 대구경북 지역 대표간사였는데 그 시기에 선교단체 멤버십이 1/3 정도가 줄어들기 시작할 정도로 급격한 감소세를 경험했습니다. 


송재룡: 네 정말 세대효과가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성현(필름포럼 대표): 아무래도 저는 필름포럼에 대표로 있으면서 여기에서 주일마다 ‘창조의 정원’이라는 주일예배를 진행하다보니, ‘창조의 정원’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사실 제도화 된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이 그들의 삶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봅니다. 또한 SBNR이라는 현상이 유교의 영향력이 없는 서구 교회에서도 발생된다는 것을 보면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교회가 영성을 추구하다가 제도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영성이 많이 희생되었고, 더 이상 청년들의 삶에 역동성과 의미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상당수의 청년들이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관에 봉사해주어야 하는 것들이 불편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저는 한편으로 한국에 전달된 기독교가 오히려 유교적 경향을 잘 활용하고 행복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이라 봅니다. 즉 농촌에서 도시공동체로 인구변화가 일어나면서 교회가 그 유교와 같은 유사 가족집단의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어느 시점에서 그 교회가 제도화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SBNR의 현상에 대해서 더욱 세분화된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송재룡: 유교의 긍정성을 말하자면, 물론 교회 성장과 60년 이후의 근대화에서 유교의 역동성과 잘 맞아떨어진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힘인 동시에 문제와 장벽이 되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유교와의 행복한 동거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교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장에 가더라도 세대 간 갈등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자유, 개인주의, 인권 등의 가치에 대한 평가나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장치가 많이 생겨났죠. 굉장히 다른 이념과 지향성과 성향들을 갖추게 된 이들이 한동안 행복한 동거가 되었었던 유교의 영향력이 이제 더 이상 이점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급부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기에서 보수정치와 기성교회 간의 정치적 친밀성에 대한 세대 이해에 대하여 깊게 분석해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거대하게 성장하는 데에 힘이 되었던 유교적 역동성이 이제는 큰 벽이 되었고, 그러한 부정성들을 넘어서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느껴집니다.


조기성: 이쯤에서 질문을 조금 바꾸면요. SBNR이라는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 굉장히 공감하고, 우리 사회와 교회에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유교적 경향성을 통해 통찰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 오히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원형 기독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독교에게 사실 기회가 되는 중요한 시기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신앙이 주장하는 내용과 가치와 경향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지난 몇 년간의 한국사회의 기독교 즉, 화석화된 교회와 대형화되는 한국교회인 거지요. 이제 이런 것들이 젊은 세대의 성향을 볼 때 거부감이 느껴지고, 오히려 원래의 원형기독교 내지는 성서의 기독교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즉  새롭게 기회로 여겨 전환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입장에서 이후의 논의를 대안에 대한 방식의 논의로 이동하면 좋겠습니다. 서구유럽이 교회가 쇠퇴했다고 보지만 사실 사회가 진보하면서 개인 생명 인권에 대한 방향이 커지면서 더 진솔한 원형의 기독교로 내딛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Religion, 즉 제도로서의 종교가 작아지고 저런 가치들이 상승하는 것이 오히려 원형기독교가 가졌던 가치의 맞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발제자: 그렇죠.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기성교회가 스스로를 문제의식 가운데 돌아봐야 하는데, 그들이 제도종교를 거부하는 것을 유아적 신앙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경화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주형: 저는 ‘서성거린다’는 말을 저 개인적으로는 영적 우울상태라고 파악합니다. 영적 우울의 상태. 우울이라는 상태의 핵심은 무엇이냐면 내적인 갈망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을 만들어내는 집단주의적 상황에서 충족될 수 없는 영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죠. 탑다운 방식의 종교인을 양성해 내는 기성교회 였다면 그러나 지금은 탑다운적인 종교적 경험이 하나님경험을 하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개인에 대한 가치가 상승하는 포스트모던주의적인 상황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들에게 종교적 제도는 깊은 차원의 하나님경험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교회를 가면 오히려 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진다. 내적인 영적 필요나 갈망이 교회에서는 충족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 핵심엔 무엇이 있냐면 의사소통방식에서도 아까 어떤 분이 말씀하셨지만 어른들이 옳고 청년들은 어리기 때문에 순종하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라고 생각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청년부 리더들은 순응적이고, 기성교회의 억압적인 체제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친구들이 학원선교에 방해가 될 수 도 있을 정도죠(웃음). 교회 리더 들은 시스템에 동조화되어있기 때문에 자기 동료들이 어떤 상황에 있다는 것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죠. 그런 형태로 종합해서 이야기 한다면, 지금까지는 복음이나 말씀들이 주는 입장에서 강조가 되었다면, 이제는 post-colonial적으로 즉 이제는 이야기를 듣는 자들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만이 옳다는 우월주의적인 태도로 이 세대에 접근한다면 포스트모던적인 상황에 대해서 선교적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의 영적인 갈망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출발점이 조금 달라야 하지 않나 생각 하게 됩니다.


발제자: 전 이 시간에 참 현장에 계신 분들을 통해 참 많이 배우게 되네요. 


조기성: 여기서 저는 특히 몸이 경험하고 있는 체제, 즉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 체제나 배치가 성서나 배웠던 예수정신과 다른 것이 매우 중요한 또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즉 나의 소속 자체가 나의 몸이 있는 곳이 다른 경험을 쌓아야만 기성 교회 안에서의 체제나 배치를 성찰하고, 비판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저는 새로운 공동체가 기존의 교회 형태가 아니라 spiritual을 중요시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데요. 사실 새로운 영적추구를 원하는 청년들은 선교단체 다른 교회형태를 몸으로 경험한 것이거든요. 몸 자체가 거부를 합니다. 즉 체제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대조적으로 대안적으로 본래 기독교성을 갖춘 체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청년의 삶을 고려할 때, 청년이 닥친 문제들 즉 취업문제, 연애문제, 결혼문제, 임신-출산문제와 관련해서 삶의 이야기 먹고사는 이야기 총체적인 문제를 spiritual적인 답변으로 교회가 답을 내줘야 한다. ‘spiritual’에 대한 논의가 먹고 입고 사는 문제가 굉장히 사실 ‘spiritual’과 관련성이 있는 것인데, 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religion, 즉 제도종교는 이것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고 봅니다. 또 그러한 religion의 공동체들이 그런 가치를 품는 체제와 축적된 내용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고요. 사실 윤리적 경향성이 배태한 사제주의 학벌주의 부동산 주의를 거부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양산한 이들을 만나지 못한 상황이고, 대안적 삶의 문화를 몸으로 겪지 못했기에 청년들도 역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기존교회가 새로운 공동체와의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주형: 궁금증이 생겼는데, 선교단체에서도 새로운 삶의 형태를 경험한다고 하셔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그런데도 왜 선교단체의 멤버십이 줄어들까요?


정인곤: 저는 선교단체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선교단체가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해준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제가 말하는 새로운 삶이라는 것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의 기독공동체라는 거죠. 그것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공동체고 실제로 답답했던 청년 대학생들이 이러한 장을 마련한 것 때문에 아주 기뻐하면서 폭발적으로 모여들었던 것이죠. 


이주형: 그런데 이제 현재에도 매력적인가요?


정인곤: 아뇨 그 대목이 이제 문제인데요(웃음). 온 친구들은 굉장히 좋아하는데. 문제는 기존교회에 남아있는 청년들은 체제 순응적이고, 선교단체 잘 못 와요. 와서 적응도 어려워하고. 특별히 보수적인 친구들이 잘 못 오는데. 그럼 전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새로운 청년들이 와야 하는데, 일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나 경제 위기의식 등 취업 등 문제들이 너무 커서 어떤 종교의 전도에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일단 뭐 저는 바깥에서 문제를 찾았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실제로 또 1차적인 감소의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심수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또 선교단체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아는 청년들이랑 이야기 한 게 있는데요. 그 친구는 권위주의고 더 이상 사회적 관심이나 정치문제에 대하여 소통할 수 없는 교회에 질려서 권위주의가 덜한 선교단체나, 진보적인 교회를 가서 해소하고자 했다고 해요. 그런데 오히려 진보적인 교회나 선교단체가 말하는 것이 일반 NGO 단체나 사회의 모임에서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고 오히려 광장에서의 모임이나 사회단체, 봉사 등 속에서 더욱 귀한 사명을 발견하게 되어서 교회를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했습니다. 


송재룡: 그래도 깊은 차원과 연관된 영적인 만족은 충분치 못하지 않을까.   

사실 참 숙제인데...  그래도 공동체성의 기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교회 공동체 그 자체의 유일한 교회는 변화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아까 어떤 분이 영성의 갈망이라고 하셨는데, 영성이라고 표현되는 갈망의 형태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봐요. 그 달리 표현되고 달리 나타나는 그 부분을 어떻게 교회가 잘 캐치하고 소통하는 언어로 신축성 있게 가지고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인거죠. 청년들의 변화하고 있는 그 관심 부분을 어떻게 잘 캐치하고, 신앙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민감하게 가지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계속해서 새롭게 계속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다양한 문제 속에서 이것을 해결하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봐요. 교회가 못한다고 하면 해답이 없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은 강박과 집착을 넘어서는 초월의 지평을 가진 교회만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성현: 저는 기독교와 교회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요. 결국은 유대교가 성전의 제사체제에서 상황의 변화에 따라 회당의 가르침 중심으로 옮겨 갔듯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형태는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어떤 면에서 교회라는 기관에 소속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교회가 희망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기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허물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교수님들은 대학에 소속되어 있으시기 때문에 대학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하시겠지만(웃음) 사실 다른 형식의 배움의 형식은 대학 바깥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 “교회가 대안이다.” 라고 얘기했을 때 사실 어느 사람들은 이미 제도권 안에 있는 교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또 우리가 애써 부여잡고 있지만 사실 교회들이 슬림해져 갈 필요가 분명히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예전에는 데스크 탑을 이용할 땐 데스크 탑으로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가 가진 고유성이나 센터역할은 있을지 몰라도 다른 형태의 예배나 형태들이 언제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열어두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김지혜: 저도 동시에 교회가 지금 ‘느슨한 공동체성’이 일어나는 상황인 것 같아요. 1인 가구의 증가나 고령화 등의 문제로 공동체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데 이미 너무 공고한 기존 교회의 공동체성은 오히려 배타성 기독교적인 교리로 신념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계속해서 고령화 될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변화의 문제가 쉽게 고쳐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오늘날에 통용되지 않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습속들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절대화시키고 있는 문화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체제가 더 공고화 되면 공고화 되었지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기존의 교회들이 좀 더 주목할만큼 좀 더 새롭고 다양한 교회들이 활발해지고 영향력을 끼칠만큼의 상황이 되어야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기성: 한편으로 궁금한 것이 아까 나눈 유교적인 부정적 습속들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이단들이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단체들은 왜 계속해서 그 멤버십이 폭발적으로 증가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퇴행현상이겠지만요. 


발제자: 그렇죠. 한국교회를 성장시켰던 그대로 작용하는 퇴행현상이라고 볼 수 있죠. 


이주형: 결국 한국사회에서의 종교성은 기독교 선교시작부터 샤머니즘과 떨어질 수 없는 상관계를 지니고 있는데요. 그 샤머니즘 디자이어를 충족시키는 종교가 또 부흥하고 있는 것인 것 같습니다. 기존교회가 샤머니즘 혹은 종교적 프레임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겠는지? 정말 기존 한국교회의 초월성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송재룡: 정말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말 우리가 깊게 생각해봐야한다고 봐요. 그러나 저는 정말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찰, 즉 비판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초월성에 기반한 교회라고 한다면 그것이 한국교회라고 했던 미국교회라고 했든 그 정신을 잃지 않는다 한다면 그로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제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가족주의 부분을 많이 비판을 했습니다만, 유사가족주의 비판. 정말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봐요. 고질적이고 정말 숙제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새로운 영적 갈망의 상태에 있는 청년들에게 그 갈 길을 제시할 수 있다면. 

저는 더욱이 그래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 경향성이 한국사회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분별하는 통찰,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의식. 그 이후에 전략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적어도 크리스천 교회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해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광훈: 결국 쭉 논의들을 들으면서 초월성의 문제에 교회가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삶의 방향이나 가치에 대해서 교회가 응답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겠죠.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에 모여 열정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게 시 글 공 유 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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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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