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읽기- 꿈의 공동체적인 의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22회(2017) 부산국제영화제에 ‘아시아영화의 창’ 초청작으로 처음 한국에서 상영되었는데, 일본에서는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을 포함해서 세 명의 조연상으로 총 6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어 소설을 접한 관객들은 다소 실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비롯한 500여 페이지가 되는 내용의 이야기의 핵심을 공감적으로 감상하기에는 어쩌면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낫겠지 싶다. 이야기는 32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현재와 과거를 널뛰기 하며 전개된다. 서로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들을 짜 맞추며 감상해야 하는 일이 영화보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긴 해도, 소설가의 상상력만큼은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연’의 의미를 실감나게 표현하려는 감독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사람의 인연과 그것이 삶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또 결실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불교적인 세계관이 짙게 깔려 있다고 보면 되겠다. 곧 사소한 일 하나도 아무 의미 없이 일어나는 법이 없고,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영화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인연의 단서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미래로부터 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청년들의 꿈은 비록 허황된 것으로 보인다 해도, 또한 비록 그것이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꿈은 어느 정도 미래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함이다. 다분히 꿈 없이 살아가는 혹은 현실에 좌절하여 꿈을 포기하며 방황하는 청년 세대들을 겨냥한 스토리텔링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 세대들에게 인연의 단서들을 소홀히 여기지 말 것과 꿈에 포함된 미래의 메시지에 진지하게 반응하며 살아갈 것을 환기한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나미야 잡화점 주인인 나미야 할아버지는 잡화점을 찾는 아이들의 고민을 상담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어떤 고민의 질문이든 결코 간과하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상담하며 따뜻한 대답으로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자신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하지 않고 아이들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대답하였기에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상담이다. 그러는 중에 나미야 할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잡화점은 폐허가 되었다.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사후 32년이 되는 해에 어떤 식으로든 공고하여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받았고 또 현재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어떤 형태로든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영화 이야기의 핵심은 32주기가 되는 날에 시작한다. 고아원 출신의 세 명의 청년들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들은 우연히 고아원을 방문하는 중에 좋지 않은 소문을 전해듣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고아원을 사들여 그곳에 러브호텔을 짓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아원을 허물고 아이들을 거리로 내쫓으려는 그 사람을 혼내줄 요량으로 집으로 찾아가 강도 행각을 벌인다. 그런데 자동차가 고장이 나 도주 계획이 빗나가자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날이 밝을 때까지 숨어 있기로 한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이미 폐허가 된 나미야 잡화점이다. 그리고 그 날은 나미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언급하신 32년이 되는 날이다. 

잡화점에 잠입한 세 명의 청년들은 그곳에서 거듭 이상한 일을 겪는다. 저주 받은 곳이라 여겨 잡화점을 벗어나기 위해 달렸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임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중에 난 데 없이 32년 전의 편지가 문틈으로 전달된다. 그들이 머무는 날 잡화점에 배달된 편지 가운데 영화는 두 명의 사람에게서 온 편지에 집중한다. 하나는 생선 가게 집 아들로서 뮤지션을 꿈꾸는 청년이 자신의 꿈과 현실의 관계를 고민하며 쓴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 필요해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이 스폰서를 자처한 남자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은지를 놓고 고민하는 편지이다. 세 명의 청년들은 반신반의하며 호기심으로 답장을 쓰는데, 나미야 할아버지가 하듯이 그렇게 따뜻한 내용은 아니지만, 받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상담을 받아들인다. 


32년 전의 일에 대한 답장이 그들의 현실에서 경험되는 일을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할 까닭은 없다. 왜냐하면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것을 바로 이런 시간적인 판타지를 매개로 삼고 있을 뿐 그밖에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 경험에 대한 영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상담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자신들의 현재에서 32년 후인 미래로부터 오는 답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세 청년은 32년 전의 일과 자신의 작은 행위가 일으킨 변화, 곧 현재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심각하게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자신의 꿈이라도 그 꿈이 현실 사회에 미치는 의미는 결코 자신에게만 제한되지 않음을 크게 깨닫고는 각자의 꿈을 이루며 살아가게 된다. 그들의 꿈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화가 말하는 기적은 단지 32년의 사이를 두고 이루어지는 시간 여행에 있지 않다. 오히려 꿈이 가져온 사람들의 변화에 있다. 다시 말해서 미래로부터 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영향을 미치며 일으키는 변화이다. 음악적인 재능이 없음에도 미래로부터 온 희망의 답장을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청년은 비록 음악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사람의 생명을 살림으로써 타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돈이 필요해 스폰서와 내연관계로 지내는 것에 관해 물어온 여성은 오히려 미래에서 벌어질 일에 대한 전망을 갖고 최선을 다해 사는 가운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며, 또한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작은 행위(장난 같은 답장)가 두 사람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알게 된 세 청년은 꿈이 갖는 의미를 깊이 깨닫는다. 그리고 이것은 세 청년의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관객은 세 청년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말하는 기적이란 세 청년들이 꿈의 공동체적인 의미를 깨달을 뿐 아니라 이것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 일을 말한다. 꿈은 결코 개인적인 의미만을 갖지 않으며, 오히려 나의 꿈이 누군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하루를 살아도 결코 허투루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흔히 꿈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는 현실에서 그것의 공동체적인 의미를 부각한 것은 곱씹어볼 만한 화두이다. 꿈의 공동체적인 의미란, 내가 갖는 꿈은 나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설령 꿈을 성취하지 못한다 해도 꿈을 향한 노력만으로 의미가 실현될 것이라 함이다. 이에 따르면, 성공만이 최고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꿈을 갖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감독의 기대대로 여러 가지 현실 문제에 부딪히고 또 좌절하여 더는 꿈을 꿀 수 없을 뿐 아니라 꿈을 꿀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작지 않은 울림과 힐링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영화가 제시하는 공동체적인 의미의 꿈에 관해 좀 더 생각해보자.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꿈에 대한 생각과 많이 다르다. 왜냐하면 꿈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만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꿈은 알릴 수 있으나 누군가와 공유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주관적이기도 하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타인과 꿈을 공유한다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다. 내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러니 꿈은 주관적이고 또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꿈을 갖고 또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설령 꿈이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노력하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것을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의 ‘인연’이라는 고리로 풀어낸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꿈의 나비효과’라 할 수 있겠다. 나의 꿈은 비록 나 개인에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해도 그것을 향한 열정을 품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꿈은 미래를 선취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꿈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공동의 미래를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래는 현재가 지향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다. 예컨대 요셉의 꿈은 꿈이 결코 개인적인 의미에 제한되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이기에 요셉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꿈 자체만을 놓고 볼 때 그것은 인류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는 일에서 요셉이 이루어낸 일이 있다면, 아무리 부당한 환경에 놓여있다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앞에서 전개되는 현실과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자신이 본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보였지만,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꿈이 세상의 생명을 구하는 일임을 보여주셨다. 

기독교인이 하나님 안에서 갖는 꿈은 결코 개인적인 의미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적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역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꿈으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꿈을 이루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꿈을 갖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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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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