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12] 기독교적 공간은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도쿄의 신주쿠, 시부야, 시모키타자와, 코엔지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지역에 다양한 문화공간 - 클럽, 바, 공연장, 서점, LP점 등 - 을 아주 재밌게 둘러보았다.

각 공간마다 특별한 개성들이 묻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각각 하나의 우주가 있었다. 그 공간을 사랑하여 발걸음을 반복하고 거기 머무르며 자신들의 세계를 충분히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예로, Disc Union이라는 중고 CD, LP음반체인점이 있었다. 가는 지역마다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픈 시간인 오전11:30이 되기도 전에 몇 명의 고객이 문앞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중고 CD, LP 체인점 Disc Unio. 본인도 U2 - Joshua Tree LP를 득템했다. 거의 40대이상 남성들이 많다. LP는 이제 아재의 취향인가;;

주로 40대이상의 남성들이 많기는 한데, 퇴근 후 문득 들러 중고 LP를 뒤지며 음악의 세계에 잠기는 모습이 흔했다. 그 공간에 가득한 7~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재즈, 락 음반들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인류의 유산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코엔지는 한국으로 따지면 옛날 홍대(지금처럼 상업화되기전) 또는 한남동 뒷골목(개인 바, 또는 이국적이고 작은 음식점이 많은) 느낌이었는데 주머니 사정이 쉽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였다.


코엔지에 있는 난토카なんとかBAR (무엇이든Bar). '가난뱅이의 역습'저자 마쓰모토가 허름한 공업사를 개조해서 만든, 주인이 매일 바뀌는 바. 약간의 사용료를 내면 누구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술집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가 1983년 펴낸 “참 재미있는 공간(The Great Good Place)”에서 처음 사용한 ‘제 3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갈수록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3의 공간 : 집도 직장도 아닌 현대인이 머무르는 도시속의 공간들)

사람들은 점점 외로워지고 애정을 쏟을 곳을 찾고 있다. SNS와 온라인 세계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동시에 집과 직장이 아닌 어딘가 머무를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찾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기독교적 공간(?)에 대해서 글을 써 보려한다. 선교는 경계지대에서 일어난다. 제3의 공간이 바로 경계지대가 아닐까 싶다. 도시속에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독교적 가치, 복음의 문화를 담고 있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기서 새로운 만남을 경험한다면 그곳이 바로 선교적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단순한 상상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기독교적 공간이란 무얼까? 그런게 있기는 할까? 7~8년전 ‘교회카페’, ‘카페교회’(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또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한다)가 엄청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관련된 세미나가 꽤 많았고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참석자들의 열기도 대단했다. 그런데 요즘 돌아보면 그러한 열기는 조금 식은 듯 하다. 개인적 생각인데 한국적 문화에서 카페를 통한 선교는 생각보다 한계가 많은 것 같다.

한국문화에서 카페온 손님이 사장님(또는 알바생)과 말을 섞고 일상을 나누는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외국 영화를 보면 점원의 이름을 부르며 일상적인 대화도 하는 문화가 있는 것도 같지만) 카페에 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행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오거나, 혼자만의 시간(노트북은 한달지, 조용히 음악을 듣는달지)을 즐기기 위해 오는 듯 하다.

그래서 ‘카페교회’를 표방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현실은 주중에는 그냥 커피장사를 하고 주일에 예배장소로 사용하는,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분리된 ‘카페’와 ‘교회’인 경우도 많다.

기독교적 카페란 무엇일까? BGM으로 CCM 틀고 벽에 성구 액자를 걸면 기독교카페일까? 그렇게 해놓으면 커피마시러 온 고객이 교회에 다니게 될까?

이야기의 방향을 잠시 돌려보자. 일본의 시부야역 앞 가장 번화한 교차로(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연상시키는)에 츠타야라는 대형서점체인이 있다. 그 비싼 땅에 그렇게 큰 규모로 서점이 있다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신쿠쿠역 앞 복합문화공간 TSUTAYA

카페부터 음반점, 다양한 생활소품을 파는 편집샵 까지 거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킨 종합문화공간이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1980년대에 츠타야를 책, DVD, CD를 대여하고 판매하는 소매점 체인으로 시작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CD를 파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업종이다’ 그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영화와 음악, 책을 통해서 생활방식을 제안해준다는 것이다. 그가 쓴 책들을 보면 얼마나 세심하게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공간의 느낌을 전해줄 것인지 고민하고 실행하는지 알 수 있다.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위즈덤하우스,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 베가북스 등)

마스다가 2011년도 시부야구의 다이칸야마에 4000여평의 서점을 짓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런 출판불황에 웬말인가’하며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곳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마스다는 프리미어 에이지(문화에 대한 식견과 구매력을 갖춘 50대이상의 세대)를 겨냥하여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그곳을 세밀하게 설계했다. 공간에 대한 고객의 경험은 주차장에서 시작되기에 숲속에 있는 주차장의 위치 선정부터 신경을 썼다.

현대인들의 ‘제3의 공간’을 향한 숨어있던 니즈는 엄청났고 츠타야는 그것을 잘 파악하여 만족시켜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기독교적 카페(?)를 만든다면 어떤 방식으로 세심하게 어떤 구체적 장치등을 통해서 그러한 공간을 구현해 낼까?

미국의 세이비어교회의 예를 참조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 코스비 목사님이 1960년대에 워싱턴 DC에 만든 Potter's House는 미국에서도 거의 최초인 기독교 북카페였다.

*초창기 60년대의 Potter's House

그 홈페이지에 가보면 역사와 공간이 추구하는 가치 등을 읽어볼 수 있다.

http://pottershousedc.org/

포터스 하우스는 단순한 카페가 아닌 ‘행동주의, 예술 및 지역 사회 개발을위한 활기찬 중심지’를 표방하고 있다. 1968년 마틴 루터킹 목사님의 암살이후 흑인인권운동에도 깊이 참여 하였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빈민가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Jubilee Housing 사역, 성인 문맹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Academy of Hope, 소수인종을 위한 스패니쉬의 밤 진행등 다양한 구체적 사역을 해왔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던 중남미의 내란으로 넘어온 난민들을 섬기는 일들을 했고 영주권이 없는 사람들과 어린 부모들을 위한 의료사역을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했다.

포터스 하우스는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다. Potter'sHouse Press는 라티노 공예품과 현지 거리 예술품 및 개인 아티스트의 작품을 기록한 아름다운 카탈로그를 제작했다. 케리그마 (Kerygma - 무엇인지 존재에 대해서는 본인도 궁금함)는 연극과 독서를 상연했으며 포크가수는 커피 하우스 앞에서 공연을 했다.

이렇게 포터스 하우스는 경계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카페였다.

물론 이들은 대단하게 해냈다! 수십년 쌓아온 열매가 너무나 엄청나서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의 접근방식은 분명 배워야할 부분이 있다. 기독교적 카페(?)를 운영할 때 그들은 이웃사랑의 행동으로, 문화예술로, 또한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접근했다. 단순히 ccm, 성구로 들이대는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의 가치는 무얼까. ‘정의’, ‘생명’, ‘평화’ 그러한 가치가 자연스럽게 묻어 나는 공간이라면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현재의 Potter's House - 워싱턴DC

뜬금 없는 이야기 같지만, ‘박성춘’을 아시는가? 그는 1800년대 후반 조선의 백정으로 태어났다. 중병에 걸려 죽을 뻔 했지만 의료선교사로 온 에비슨의 치료로 살아나게 되었다. 에비슨은 고종의 주치의였다. 당시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백정을 찾아와 ‘당신도 하나님이 만드신 귀한 사람입니다’라며 치료해준 선교사. 세상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그런 것이 복음이라면 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박성춘과 온 가족은 세례를 받았다.

기독교적 공간도 그러한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이기주의적 무한경쟁의 세상 속에서,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묻어 있는 공간. 예수께서 말씀하신 작은 자를 사랑하는 정신이 문화로써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그런 공간.

물론 이것을 구현해내는 것은 쉽지 않겠다.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잘 해내고 있는 사례들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앞으로 ‘제 3의공간’의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고, 선교적 의미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제3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카페가 될 수도 있고, 서점이 될 수도 있고 공연장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기독교문화’ 하면 교회로 불러서 (전교인총동원전도집회랄지) 그것을 맛보게 하는 방식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경계지대인 사회속의 ‘제 3의 공간’에서 복음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박성춘이 에비슨의 의료술과 환대를 만나서 ‘이것이 복음이라면 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듯이.

 

 

<이번호 부록 : '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IVP)에서 정리한 Potter's House의 인상적인 점.

초창기 기준임. 지금은 재오픈하였고 방식도 조금 다른 듯>

 

 

*저녁8시~12시까지만 운영하는 카페였다

*원래교회로 만든게 아니고 본진교회(?)는 그대로 있고 선교적 공간으로 여기를 추가로 만들었다.

*교회성도들이 자원봉사 개념으로 매일순서를 맡아 서빙을 했다.

*목사가 사장 개념은 아니었다(물론 고든 코스비 목사도 타임별로 자원봉사는 했음)

*바리스타, 설거지인원, 청소인원은 유급직원이었다. 즉 자원봉사자 성도들은 손님들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서빙의 일을 주로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오히려 연 3000달러를 지출했다(당시 금액이니 꽤 클듯. 운영시작 7년후기준)

*그러므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주는(떄로는 몇년에 걸쳐)데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

*초창기 부터 이 카페가 결국은 '사람들을 교회에 끌어들이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거 아니냐'는 내부의 회의가 있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노렸했다.(본진교회는 소개하지도 어떤 언급도x)

*이 카페에서의 봉사를 통해 교회구성원들이 영적훈련을 구체적으로 해나갔다.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름에서 오는 갈등 인지,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보여주는 역할(전도의 말을 쓰지 않고)

....오늘의 한국에 흔히 예상되는 카페교회의 모습과는 좀 다르다. 어느것이 옳다기 보다는 상황이 다른 듯.

*한국교회는 대부분 카페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도구구로 접근한다(potter's house는 비용지출하여 운영)

*한국교회는 개척교회로 시작하기에 담임목사 1인이 사장을 겸하는 구조인데 (p는 성도들의 운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비용절감보다는 손님들과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가 큼)

*미국문화상 카페에 온 손님이 서빙하는 사람과 말을 섞고 인생얘기도 하는 거 같은데 한국문화에서 카페에 와서 사장이나 알바와 말을 섞는 사람은 잘 없는 듯하다.

*한국교회는 어쨌든 주중에 카페에 온 손님이 주일 예배로 연결되는 것을 목표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p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피했다.

*p는 어느정도 재정과 인력의 여력이 있는 안정된 교회(그래봤자 일이백명규모이니 한국대형교회보다는 작지만)에서 런칭한 사역의 개념이라 위의 일들이 수월했지만(물론 탄탄한 신학적 배경이 있기도 했지만)

한국의 카페교회경우 대부분 목사 한사람이 개척교회 개념으로 재정적으로 생존하며 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전형적이라 p처럼 하기는 쉽지 않다.

 

글쓴이_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http://facebook.com/narnia2015)이라는 작은 클럽의 사장이자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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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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