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과학-1] 기독교와 과학은 필연적으로 갈등 관계에 놓이는가? - 갈릴레오 스캔들





기독교와 과학은 필연적으로 갈등관계에 놓이는가?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노아”는 성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장면들을 연출한다. 영화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인간의 타락 상황에서도 묵묵히 창조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노아와 모든 존재하는 것을 개발하고 자신의 소유로 삼아버리는 두발가인을 극적으로 대비하여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더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타락한 인간을 대표하는 두발가인과 그의 세력들은 끊임없이 주어져 있는 “자연”(φύσις)을 변형하여 자신의 세력과 영토를 넓혀가는 기술 문명으로 묘사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와 그 가족들은 자연물들을(e.g. 꽃) 그것 자체로 내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자들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아와 두발가인에 대한 대비적인 묘사는 단순히 성서의 내러티브를 반복재현해 내는 차원을 넘어서, 현대 기술 문명이 가지고 있는 폐해, 곧 모든 것들을 수단화하고 대상화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 불거져온 주-객체 사이의 비대칭성은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대상화를 만들어내었다. 오늘날 행해지는 인간의 수단화 혹은 대상화는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폐해가 아닐까? 서로를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 혹은 거대한 조직이 운영되기 위한 부품처럼 소비하게 된 모습이 바로 영화가 꼬집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모습은 아닐까? 이러한 상황 중에 종교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일까? 영화는 모든 존재하고 있는 것을 “피조물”로 여기는 노아의 모습을 통해 종교가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제시하는듯 하다. 노아에게는 꽃 한 포기도 아무런 이유 없이, 혹은 주체의 심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꺾여질 수 없다. 꽃 한 포기조차도 창조주의 목적을 담고 있는, 그러므로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렇듯 영화 “노아”는 기독교 내러티브를 통해 과학기술주의(Scientific Technicism)를 경계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과학기술이나 자연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반과학주의적 사상을 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창조주의 물을 통한 심판으로부터 구출되어 방주에 오른 노아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가 시선을 끈다. 영화는 창세기 1~2장의 창조기사를 노아의 나레이션을 통해 들려주면서, 영상을 통해서는 현대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이론들을 바탕으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보여준다. 태초에 “빛이 있어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빅뱅의 순간으로, “땅은 생명체를 놓아라!” 하는 명령은 최초 세포 생명체가 원시 지구상의 화학 수프(primordial soup)로부터 출현하는 것으로, 그 이후 진화과정을 통해 현생 인류가 출현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창조의 역사를 담아낸다. 그렇다면 영화 “노아”는 혹자가 이야기하듯 "타협의 거센 바람”에 의해 생겨난 유사-기독교적 이해를 담고 있는가? 현대 기독교인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과학주의 (scientism) 혹은 과학기술주의(scientific technicism)”인가? 아니면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그 자체인가?

 필자는 몇 번에 걸쳐 자연과학과 기독교 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글을 쓰려 한다. 이를 통해 자연과학과 신학은 각각의 인식방법을 통해 같은 실재의 서로 다른 두 차원을 보여주기 때문에, 두 학제 간 대화가 필연적으로 요청됨을 주장할 것이다. 본 시도는 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변증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이 자연과학으로 인해 위협 받고 있다고 오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렇지 않음을, 오히려 자연과학을 통하여 자신들의 신앙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음을 피력하려고 한다.

기독교와 과학은 필연적으로 갈등관계에 놓이는가?: 갈릴레오 스캔들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판단하는데 암묵적으로 기여한 몇몇 사건들은 자연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자연과학적 이해가 상충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하지만 필자는 실제로 충돌하는 것은 과학과 기독교가 아닌 성서해석의 상이한 입장들임을 지적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예가 1633년에 있었던 그 유명한 갈릴레오 재판일 것이다. 갈릴레오(A.D. 1564-1642)는 약 2세기부터 정설로 여겨져 왔던 프톨레미우스(A.D. 83-168)의 천동설을 거부하고, 비교적 최근 연구를 바탕으로 16세기에 제시된 코페르니쿠스(A.D. 1473-1543)의 지동설을 지지하였다. 갈릴레오의 입장이 알려지면서 우리는 그가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지동설을 철회하도록 고문당하고 교회에 의해 강요받았다고 알고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갈릴레오가 최종적으로 화형에 처했다고까지 믿는다. 하지만 과학신학자 조슈아 모리츠(Joshua Moritz)는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모리츠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가 갈등 관계에 놓여있다는 인식과 그로 인한 오해들은 과학사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기된 주장이 아닌, 종교와 과학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정치-사회적, 혹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일례로 코넬 대학을 설립하였던 앤드류 화이트(A. D. White)는 대학 설립 당시 학교가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 당했다. 이러한 상황은 화이트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코넬 대학은 정부의 지원금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들과 경쟁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화이트는 종교가 대학의 과학연구와 교육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피력함으로써 그 경쟁자들을 따돌려야만 했다.[각주:1] 이를 위해 그는 갈릴레오 사건을 무자비하고 무지한 기독교인들과 객관적이고 순수한 과학자 사이의 갈등으로 변질시켜 놓았다.[각주:2] 

 그렇다면 갈릴레오 사건의 전말은 무엇일까? 갈릴레오 시대에는 코페르니쿠스적 지동설과 프톨레미우스적 천동설을 수정한 타이코닉 천동설이 경쟁하던 상황이었다. 갈릴레오가 지지하던 지동설을 뒷받침해줄 결정적인 증거(e.g. 별의 연주시차)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당시 지배적으로 통용되던 타이코닉 이론도 반증 되지 않았다.[각주:3]  이러한 상황에서 갈릴레오는 타이코닉 천동설을 지지하던 가톨릭의 성서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활동했던 17세기 초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던 시점이었다. 성서해석 주체를 신앙인 개인으로 돌려놓은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 예민해 있던 가톨릭은 교회가 성서해석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다시 말해, 가톨릭 교회에 의해 용인된 성서해석 외의 다른 해석은 쉽사리 인정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갈릴레오는 두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였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지동설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관찰데이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가톨릭교회의 성서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관철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난처한 상황에서 가톨릭 사제 모두가 그의 성서해석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각주:4]  먼저 1616년 갈릴레오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열린 가톨릭 사제 위원회는 비록 결정적인 증거 부족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검증 가능한 가설의 위치로 인정했다. 그중 로베르토 벨라마인(Robert Bellarmine) 추기경은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문자적 사실이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닌, 가설의 차원으로는 표현해도 된다고 허가하였다. 추기경은 갈릴레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당신의 이론을 증명하면 우리는 우리의 성서해석을 맞추어 바꿀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당신의 이론을 가설의 차원에서 가르쳐야만 합니다.”[각주:5] [각주:6] 마페오 바르베리니(Maffeo Barberini) 추기경은 1611년부터 갈릴레오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였다. 1623년 그가 교황 우르바노 8세(Pope Urban VIII)로 추대된 이후에는 갈릴레오에게 종교적 작위를 비롯해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면서,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입증할 수 있을 때까지 과학적인 가설의 차원에서 주장할 수 있게 하였다. 다시 말해, 갈릴레오는 자신이 지지하던 코페르니쿠스적 지동설을 연구하고, 관련된 연구물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공식적으로 가톨릭교회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교황이 자신의 지동설을 가설의 차원에서만 지지한다는 것이 못마땅했고, 이에 그를 비판하면서 둘 사이의 유대감이 약화되었다. 나아가 교황이 1616년 이미 있었던 벨라마인 추기경과 갈릴레오 사이의 합의와 갈릴레오의 합의 불이행을 인지하게 되면서, 갈릴레오는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각주:7]   살펴본 바와 같이 갈릴레오 스캔들은 기독교와 자연과학의 갈등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갈등 관계에 놓여있는 두 진영은 당시까지 얻어진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부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형성한 갈릴레오의 성서해석과 당시 통용되던 타이코닉 천동설을 기반으로 한 가톨릭교회의 성서해석이다. 타이코닉 천동설이 당대 과학자들에 의해 반증 되었더라면, 벨라마인 추기경의 말처럼 가톨릭교회는 기꺼이 자신들의 성서해석을 수정했을는지 모른다.

오늘날도 갈릴레오 스캔들과 같이 오해되고 있는 다른 사건은 없을까?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빅뱅 우주론, 화학 진화론, 다윈 진화론 등은 기독교의 창조신앙과 배치되는 이론일까? 해당 이론들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오해는 없을까?
 

정대경(명지대학교),
학창 시절 배운 자연과학 이론들 때문에 종교에 회의적이었다가, 회심 체험 후 기독교인이 되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생명의 기원과 하나님 행위(Divine Action)”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명지대학교에서 교목 및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1. Joshua Moritz, “The War that Never Was: Exploding the Myth of the Historical Conflict Between Christianity and Science,” Theology and Science 10.2 (2012): 114-115. [본문으로]
  2. Ronald L. Numbers, “Introduction,” in Galileo Goes to Jail, and Other Myths about Science and Religion, ed. Ronald L. Number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2. [본문으로]
  3. Jerome J. Langford, Galileo, Science, and the Church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2), 68. [본문으로]
  4. 갈릴레오가 지지하였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또한 이미 사제들에 (e.g. professor of the University of Paris, John Buridan; the fourteenth-century bishop, Nicole Oresme (who argued that the observable data and physics alone could not demonstrate whether or not the Earth was rotating); a fifteenth-century cardinal, Nicholas of Cusa) 의해 지지를 받았었다. 갈릴레오 이전의 신학자들은 이미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 아닐 수 있음을 생각했다. Moritz, 116 [본문으로]
  5. Langford, 69 [본문으로]
  6. Moritz, 116-119. [본문으로]
  7. 갈릴레오는 벨라마인 추기경과의 합의점을 교황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깜빡 잊었었다”고 표현했다. Moritz, 118, from Lawrence M. Principe, Science and Religion ‘‘Lecture Six: Galileo’s Trial.’’ The Great Courses (Chantilly, VA: The Teaching Company,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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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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