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여성을 존중하는 아이로 양육하는 법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서, 여러 뉴스가 아이들 앞에 노출되면 움츠러들게 된다. 유명 남성들이 정치·정부·스포츠·연예계 등 높은 지위에 앉아, 여성을 이용하고 학대하는 것을 보면서, 일부 남성들이 갖고 있는 고압적이고 여성 혐오의 개념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개념을 아들들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지 가끔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는 아들을 교육하는 이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기독교인이 다음 세대 남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자아이들의 여성 존중감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동등과 구별
생각이나 말, 행동으로 여성을 학대하는 경우는, 남녀 문제에 있어서 동등과 구별의 상호 작용을 무시할 때 생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졌다는 점(창 1:26~27), 세상의 기경에 부름을 받았다는 점(창 1:28),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상속인이라는 점(갈 3:28~29)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다. 우리는 동일한 기원, 동일한 복음, 동일한 운명을 가졌다.

동시에, 성경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확히 구별하고 있고, 때로 각자의 특정한 소명과 약점을 언급하고, 서로에게 져야하는 책임감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만일 이런 사실 중 하나라도 깎아 내리거나 무시하면, 결국 남성이 여성을 학대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여성을 전혀 다른 존재로 보거나, 남성이 없으면 약하고 부족한 존재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 구별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의 존엄성과 소명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때로 이는 여성을 공격하거나 학대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여성에게 부여한 재능과 리더십을 찾지 못하게 하는 “기사도” 남성으로 등장한다. 또 때로는, 가장 안 좋은 형태로, 여성을 성·분노·수치의 문제에 있어서 남성보다 둔감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남녀 활동에서 독특한 약점에 대해 입을 막는다는 점에서 이런 동일함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 모두 목적을 위해서 다른 존재를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서로 싸우거나 다투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종종 특별히, 남성은 여성을 학대하지 말고, 여성을 존중하고 돌보라고 언급하고 있다(엡 5:25~30, 딤전 5:2, 벧전 3:7, 약 1:27).


왜 이렇게 되었나?

성경은 약함을 덜 중요한 표시로 이해하지 않는다. 사실, 약함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백성에게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실제로 누구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향한 특별한 약함에 대하여 남성이 행하는 잠재적 학대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확실히 전부는 아니지만, 여성은 남성만큼 신체적으로 강하지 않아서 피해에 취약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자식이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더 가깝게 양육된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남성은, 자신의 몸을 통해 아이를 잉태하는 여성보다, 좀 더 쉽게 자식에 대한 책임을 버릴 수 있다. 어떤 약함은 문화적이기도 하다. 현재나 과거에 남성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모계 사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성을 억누르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더욱 슬프게도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고, 무엇보다 무신론의 가부장적 사회의 정의로 보게 되면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그 정의는 성적인 매력과 남성이 쓸 이용가치의 관점에서 여성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이런 어둠의 정신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와 이를 어떻게 소통하나?

우선, 아버지나 남교사는 특히, 신실하고 강한 여성을 통해 배우고 이를 고취시키는 방법으로 강조할 수 있다. 룻·브리스길라·루디아·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머니와 누이까지, 성경적 예시의 이런 리더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기혼이면, 아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목사이면, 설교의 예화나 가르침에서 여성을 얕보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된다. 남성과 여성, 공통의 상속에 묶여 있는 여성의 창조와 최후 소명을 강조해야 한다.

주변에 젊은 남성들을 성폭력·여성혐오의 발언이나 여성 폭행을 정당화하는 것에서 강력하게 격리해야 한다.


여론 공유

동시에, 여성을 잘 대하지 못하는 남성의 참상에 대해 강조해야 한다. 주위의 어린 남자아이들이나 젊은 남성을 성폭력이나 여성 혐오 발언·여성 폭행에서 완전 격리해야 한다. 예로, 스포츠 인사나 같은 당의 정치인·좋아하는 연예인 등과 관련된 이슈가 될 수 있다. 위선적 행동은 다음 세대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폭력의 방향으로 내몰 뿐이다.

다른 남자아이를 때리는 남자아이들도 훈육하여야 하겠지만, 여자아이를 때리는 남자아이에게는 비난의 강도를 더 강하게 해야 한다. 분노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치는 사탄의 힘을 일찍이 고쳐 주는 것이 낫겠지만, 자신의 ‘힘’을 힘없는 여성과 여자아이에게 행할 수 있는 미래의 남성에게 특히나 적용되어야 한다.

사탄은 여성이 힘 있는 남성에게 희생되기를 원한다. 사탄은 남성이 폭력자나 학대자와 같은 잘못된 길로 빠지기를 원한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신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주님, 그 신부를 종이 아닌 친구로 대하시는 주님(요 15:15), 객체가 아닌 공동의 상속자로 대하시는 주님(롬 8:17), 바로 그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Russell Moore 남침례신학대학교에서 신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원문은 www.christianity.com에 게시된 "How to Teach Boys to Respect Women"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번역, 편집해 한국교회에 소개한다.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삶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