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의 대화] 2018년이 본 1987년, 1987년이 본 2018년(2): 민주주의와 시민의 탄생, 그리고 기독교



영화 <1987>이 누적 관객 7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그간 조명되지 못했던 6월 항쟁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습니다. ‘87년’을 경험한 세대와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 모두가 최근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영화의 메시지에 보편적 공감대를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30여 년 전 사건의 경험 여부에 따라 영화를 본 감상평도 저마다 다른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문화선교연구원에서는 세대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왜 지금 6월 항쟁을 이야기하는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진행한 변상욱 대기자(CBS)와의 인터뷰를 가상의 인물 청년A와의 대화로 재구성해, 2편의 글[1부 보러 가기]로 나눠싣습니다. - 편집자 주 

세대 간의 대화

- 변상욱 대기자 : 87년 당시 현장을 취재한 CBS의 대기자

- 청년A : 최근 촛불집회에 참여한 90년생 모태신앙 청년


# 시민의 탄생, 1987년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청년A : 전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87년의 민주화 운동과 촛불집회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항쟁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단지 제가 제대로 겪지 못한 것도 있고, 또 전두환 정권만 내렸지 오히려 그 이후의 민주화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서 87년이 언급되더라도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1987>을 통하여 촛불이 연상되면서 민주화를 이루어낸 물결에 나도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연결점이 생겼죠. 그래서 더더욱 감사하게 되고, 현재에 책임감을 갖게 되었어요. 


변상욱 대기자 : 역사적으로 결을 같이하는 다양한 운동이 있었어요. 시민의 각성, 민주시민의 탄생, 시민 민주주의의 탄생으로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죠. 눈에 띄게 이룬 건 없었지만 4·19는 불법선거는 안 된다는 시민의 각성이 주가 되었죠. 6월은 민주시민의 존재가 드러났고, 이번 촛불혁명에서는 시민 민주주의가 뚜렷이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험의 계승이 조금 더 체계화되면 시대와 시대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텐데, 앞으로 그렇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청년A : 영화 <1987>이 흥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왜 지금 <1987>인가, 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왜 2017년, 2018년에 사람들이 6월 항쟁에 관심을 가지는가, 그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게 되더라고요. 6월 항쟁 이후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열패감과 배신감 등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촛불과 탄핵으로 비로소 자신감이 붙으면서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대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변상욱 대기자 : 시민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엘리트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해낼 수 있는 역사 속에서의 일들은 무엇인가. 그 감수성이 촛불을 통해 살아난 거죠. 영화를 보니까 그걸 더 느끼게 되고요. 

KBS가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기획한 방송이 제목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시민의 탄생"이야말로 1987년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죠. 사실 87년 운동은 정치엘리트와 학생엘리트가 주도하는 운동을 시민들이 거들면서 완성된 것이고, 이번 촛불은 정치적 비판과 저항, 탄핵소추, 의결된 탄핵을 헌법재판소 대통령 파면으로 가져가는 모든 시나리오와 과정이 직접민주주의에 다가간 시민의 탄생인 것이죠. 노총이 자리를 마련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카톡 방,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면서, 제각각의 결을 그대로 살리는 시민들 목소리의 총집합이었다고 봅니다. 학업, 임금, 입시 등에 대한 각자의 불만이나 다양한 자신의 의견을 가진 독립적인 시민 세력의 등장은 곧 함께하되 각자 따로 하는 특이한 시민사회의 탄생이 갖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 민주주의는 현재 진행형

청년A : 이번 촛불집회를 30년 전에 견주었을 때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봐도 될까요? 민주주의의 형식에 있어서는 촛불집회부터 시작해 청와대 국민청원 등 직접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중이라고 여겨져요. 

 

변상욱 대기자 : 절차적 민주주의가 발전한 건 분명하고. 예전엔 여당과 여당에 일조하는 야당만 있었는데 여당 야당이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로서 엄청난 발전이죠. 그런데 제가 보았을 때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절망하는 부분은 양극화와 관련된 부분이에요.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잘될 놈만 잘되고, 최저임금은 오르지만 오히려 최저임금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도 오히려 잘 될 사람만 또 잘 되는거 아니냐는 생각. 촛불의 힘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거나 가진 것을 조금만 양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만, 촛불은 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언제나 발단만 제공하고 끝나니까요. 예전에는 직접민주주의가 말이 되냐고 했지만 이제는 직접민주주의가 더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생각들이 많이 바뀌고 있죠. 양극화에 대한 문제 인식만 고취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그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청년A :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어떤 제도 말고 민주주의라는 문화가 우리 안에 자리잡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직문화 안에서는 아직도 군대문화나 상명하달식의 충성방식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사회참여

청년A : 화제를 이쯤에서 돌려서, 영화에서 드러난 기독교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기독교인으로서 영화에서 정치를 대하는 교회의 두 모습이 묘사된 점이 인상 깊었는데요. 어떤 부류는 민중들의 정서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부류는 전혀 반대로 생각하고 있고요. 일단 한국교회는 반공에 대한 의식이 너무 강해서요. 여기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변상욱 대기자 : 냉전시대에는 양극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제3세계 민중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었죠. 미국과 소련, 두 세력 모두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민족의 주권을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는 민중의 흐름이 있었어요. 기독교의 경우, 진보진영, 진보교단을 중심으로 WCC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진행되고 있었지요. 이후에 복음주의 진영도 이 부분에서 비슷한 각성이 생겨났죠. 교회의 부흥과 성장만 생각하던 우리가 너무 갇혀있었던 것은 아닌가, 사회 현실이 이런데 이건 아니지 않나, 하면서 보수교단 청년들이 공부를 시작하고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로잔 선언(1974)을 발견하게 된 거고요. 교회는 교회 안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민주화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봉사 두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반성이 일어나게 되지요. 하지만 그것이 간첩단 사건으로 몰려 복음주의에 침투한 좌파세력들이라는 주제로 엮여서 잡혀가는 게 기록에 남아있죠. 


청년A : 가슴 아픈 한국교회의 역사네요. 그래도 87년 운동인사들 중에서도 기독교인들의 비중이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기독교의 이름으로 활동한 사회운동들이 너무 잊혀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변상욱 대기자 : 그 당시 ‘보수교회는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어렵죠. 한국 기독교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60년대에는 가톨릭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는데, 탄압을 받는 바람에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개신교가 이어받았어요. 개신교는 기장과 예장 통합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주화가 이어졌지만, 세력이 많지는 않았죠. 개신교가 명맥을 이어가는 동안 가톨릭이 새로운 조직을 복원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정의구현사제단이에요. 80년대 들어서 천주교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을 견인해 나갔죠. 그때 대학에서 하는 총학생회 운동이 조직을 갖추기 전에, 기독교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KSCF(기독학생운동연맹), 대졸자들과 청년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EYC(기독청년협의회), 두 개의 청년 그룹이 민주화운동을 견인해 나갔었죠. 그래서 학교에서 하는 것 외에 이루어졌던 사회에서의 거의 모든 민주화운동은 종로 5가 기독교회관이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민주화의 성지 역할을 했죠. 그러다 학교 내에서 조직화된 그룹과 만나는 거죠. 그런데 일반 운동권 청년들이랑 기독청년들 사이에 혁명과 기독운동 사이의 애매한 벽이 존재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 김근태가 이끌었던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었고요. 80년대를 한 장면으로 설명하기엔 복잡하지만 개신교그룹, 민청련그룹, 대학생그룹이 섞이다가 나중에 대학생이 늘어나면서 주도권을 잡은 거죠. 


청년A : 한편으로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기독교농민회에 속하셨던 어른 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은 농민 그리스도인 한 개인으로서 싸웠던 것이지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해 바라는 점은 없더라고요. “교회는 뭐 원래 보수적인 경향이 있지.” 하시며 쿨하게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요. 민중교회나 민중신학이 대중과 운동권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쇠퇴한 이유로 주중에 계속 힘들게 싸우는 이들이 주일까지 힘들고 싶지 않아서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기도 하더라고요. 당시엔 웃었지만 사실 사회적 현실에 대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됩니다. 


변상욱 대기자 : 사실 기독교 내부의 역사적 성찰을 하자면 그 역사 속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지 좀 연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동시에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어떤 실존적인 고민을 갖게 되는가를 고민하면서, 대개 세 부류로 나뉘어 왔다고 봐요. 첫 번째는 역사 속에서 예언자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신앙인의 실존이 참 어렵다고 느끼는 입장이 두 번째고, 세 번째 우리는 피안의 세계에 와있으니 눈도 닫고, 귀도 닫으라는 입장. 주류인 보수 기독교는 마지막 입장과 연관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죠. 

 

청년A : 저도 기독교이지만 고민될 때가 많아요. 


변상욱 대기자 : 당시에도 이런 것으로 고민하는 기독청년들이 많았죠.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한계를 느낀 기독청년들이 공장으로 들어가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고, 교회에만 무조건 기대할 수가 없으니까 시민세력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YMCA쪽으로 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경우 민주화 운동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대중 시민운동이었기 때문에 크게 발전하진 못했죠. 대신 교사 공부모임이나 교사모임이 시도되면서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 발전하게 된 거에요.

이 지점에서 크리스천 개인들은 항상 실존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것 같습니다. 민주화운동 시절 당시 화염병부터 준비하는 일반운동권과 달리 기독교운동권은 현실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는가', '우리는 기도제목으로 무엇을 삼아야 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누구에게 던져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진짜로 전경들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것밖엔 없을까.’ '요지부동인 기득권이나 무지한 이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신학자 본회퍼도 아마 한 개인으로서의 실존, 신앙인으로서의 고백, 당장의 역사적 현실, 이런 것에 많이 부딪히고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한 고민을 담은 진솔한 기독교 영화가 나온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영화 <1987>은 민중의 집단적인 발화를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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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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