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1987> 읽기- 나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 <1987>은 1987년 고문에 의해 질식사한 박종철 사건으로 시작해서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통해 마침내 6.29 선언이 나올 때까지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룬다. 6월 민주화 항쟁을 촉발시킨 사건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라 보면 되겠다. 

1987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특별한 해일 것 같다. 1980년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세운 군사정권을 영구화하려는 계략을 막아낸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987년은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알려진 일련의 항거로 마침내 전두환으로 4.3 호헌 조치를 포기하게 하고 또 노태우의 6.29 선언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해이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힘겹게 쟁취한 대통령 선거에서 안타깝게도 원하는 정권교체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1987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정신은 2016~7년 촛불시위에서 자주 회자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역사이다. 왜 그런지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영화는 추적한다. 

1980년 광주의 민주화의 봄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의 실상을 알게 된 국민들의 저항은 80년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가열되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정권에 반대하거나 방해된다고 여겨지는 인사들을 용공분자로 규정하고 주요 정치인들과 엮어서 한꺼번에 검거하려 혈안이 되었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적합한 인물로 그들은 박종운을 염두에 두고는 그의 후배였던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검거하여 고문하였다. 그러다 남영분실 509호에서 박종철이 물고문 중에 질식사하였다. 공안당국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고, 사정이 여의치가 않자 사건을 축소하고 조작하여 발표하였다.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관계자의 해명은 개그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된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공수사단 조차도 별 의미가 없다고 여긴 일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숨을 쉬지 않는 박종철을 살리기 위해 민간인 의사를 불러들인 것이나, 소위 꼴통 공안검사의 소신 있는 부검결정, 당시 정부의 보도지침을 어기면서까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기자의 직업정신, 그리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수배중인 민주인사들을 숨겨준 교회, 그리고 이들을 비밀리에 서로 연결해준 교도관의 노력,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격렬한 반응 등, 이것들은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 보면 쉽게 잊히거나 묻힐 수 있는 작은 사건들에 불과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밝히는 기폭제로 작용하여 1987년 6월 항쟁의 성공에 기여하였다.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 작은 단서들이 6월 항쟁의 기폭제로 작용하게 되기까지 진행된 과정이다. 역사적인 고증이 잘 되어 있어서 민주화를 외치는 정치인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6월 항쟁이나, 해마다 6월이 되면 불렀던 ‘그날이 오면’의 의미와 배경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역사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이들의 역사 교육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허구적인 요소가 없지 않지만 그것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영화를 역사적으로 경청하는 일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이 아주 작은 사건들이었다는 사실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하나의 작은 사건들이 이야기로 엮어져 거대한 역사의 흐름으로 발전해나가는 데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사건과 사건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으며, 이에 따라 개별적인 사건들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이야기로 거듭나 읽는 자들에게 지식이 되고 또한 교훈이 된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당시에 일어난 개별적인 사건들을 엮어 1987년의 6월 민주화 운동을 재구성하였다. 

특별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공안당국의 폭력이지만, 시민들의 참여와 그것이 갖는 폭발적인 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곧 박종철의 고문치사로부터 시위현장에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기까지 단지 단편적일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6.29 선언을 이끌어 내고 또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불의한 사건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고 뜨거운 열정을 갖고 반응하며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있었음을 환기한다. 

당시 진압군에 밀려 명동성당에 들어가 있었던 필자의 기억에 의존하면, 거리의 시민들은 학생들의 시위에 박수를 쳐주었고, 건물에 갇혀 있던 줄만 알았던 넥타이 부대(회사원)들은 창문에 매달려 응원을 해주었고, 일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위 현장으로 나와 함께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쳤다. 택시 및 버스 기사들은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려 그들도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명동성당에 갇혀 집으로 가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상점의 주인들은 먹을 것을 공급했고 또 옷가지들을 챙겨주었다. 

각종 시국 사건들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무엇보다 가족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멀리서 관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나마 시위의 현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한 여성을 주목하게 한다.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일이 가족을 힘들게 할 뿐이라는 이유로 시국과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가려 했던 연희(김태리)다. 그런 그녀 역시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느꼈을 때는 자신도 모르는 뜨거운 열정에 이끌려 시위현장 한 곳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감독은 그곳이 마치 그녀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였다는 듯이 연출하였다. 그녀를 시위현장으로 불러내고 그녀로 그곳에 서 있게 만든 것은 한 시민으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폭력이 그것이다.

감독이 이 장면을 연출한 이유는 이것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1987년의 민주화가 가능했던 데에는 불의한 정권을 좌시하지 않고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역설한다. 불의한 사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결코 기억되지 못했을 역사였다는 것이다. 

2016년 촛불혁명도 그랬다. 박근혜 전 태통령을 탄핵시킨 힘으로 작용한 2016년 촛불혁명 역시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반응과 그것에 대한 정부의 은폐와 조작 시도, 그리고 마침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보수 신문들은 사태를 왜곡하여 보도하기 바빴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가득 채운 공영방송 관계자는 보도를 통제하였다. 시민들의 반응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수는 비록 초기에는 적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났다. 방송은 물론이고 댓글부대가 동원되어 SNS에는 왜곡되고 거짓 정보들이 난무했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거부해야 할지 분간하기 어려운 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는 몇몇 매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실상이 폭로되고 JTBC에 의해 진실이 보도되면서 그동안 미온적인 입장에서 관망하던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들, 퇴근 후에 참여한 사람들, 데이트 장소로 선택하여 기꺼이 촛불을 든 연인들이 있었고, 학원에 가는 것보다 촛불을 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초등학생과 중고등 학생들도 있었다. 


기독교적인 관점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것 같은 일련의 작은 반응들이 불의한 역사를 바로 잡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한다. 사실 불의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단번에 심판하지 않고 왜 작은 불씨로 시작하고 또 오랫동안 지속하게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게다가 그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의문은 더 커진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협력한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만들면서 서로 도우며 살도록 하셨듯이,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사는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 때 어디에 서 있었을까? 역사를 재현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인이 진지하게 묻고 또 고민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인지하지 못한 책임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수배중인 민주인사를 숨겨주는 교회 때문에 비록 체면은 찾았지만, 당시 수많은 교회들은 정부 발표를 강단에서 옮기기에 바빴다. 민중교회와 일부 교회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다수의 교회는 정권에 길들여져 있었다. 시위대를 가리켜 용공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교회로 피신한 학생들을 쫓아냈다. 명동성당의 신부님들이 진압군에 의해 쫓겨 들어온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과거가 아닐 수 없다. 당시 교회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고, 일부 성도들 역시 그랬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민주화 과정이지만, 교회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역사다. 

촛불혁명과 함께 청산하지 못한 교계인사들이 많다. 촛불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세월호 리본을 달았던 사람들을 종북이니 좌파니 하며 비난한 교계인사들을 말한다. 그들은 기득권에 붙어 지내면서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았고 촛불혁명이후에도 여전히 교계인사로 인정받으며 지낸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또 다시 수구보수 세력에 붙어 불의에 아무런 항거를 하지 않고 또 저항하는 성도들을 용공세력 혹은 종북 좌파으로 규정하며 비난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는 일에 너무 소극적이다. 6월 민주화 운동과 촛불혁명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배울 수 없다면, 도대체 기독교 영성은 살아 있다 말할 수 있을까? 개혁은 신앙 양심에 따라 불의에 반응하는 성도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이다. 항거한다고 해서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개혁은 다만 신앙 양심에 따라 불의에 저항하며 반응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단면일 뿐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를 늘 반성하며 살 일이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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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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