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문화선교연구원 선정 사회문화분야 10대 이슈 - 심층이슈2




심층이슈 2. 점점 대두되는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미래


4차 혁명의 실체는 여전히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지 정확하게 추측할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4차 혁명의 특징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될 것이라는 점만 예상할 뿐, 그 변화가 너무도 급격하고 강력한 것이라서 미래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량생산방식으로 전개된 2차 혁명을 넘어, 컴퓨터, 자동화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까지는 예측가능한 선형적 속도였으나, ‘4차 혁명’은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은 4차 혁명에 대한 공포와 기대가 중첩되어 있다. 4차 혁명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해서 모두가 실직자가 될 것에 대한 괴담에서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이르기까지, 그 결과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런가 하면 4차 혁명으로 인해 결국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더 창조적이며 자신을 발전시키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감도 있다.

4차 혁명 시대의 명암

최근 등장한 ‘알파고 제로’는 기존의 ‘알파고’와 벌인 대국에서 100전 100승으로 거두었다고 하여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미 인공지능 자동차가 실험중이고, 무인 은행이나 마켓이 선보이고 있다. 편리해지는 것은 분명한데, 이렇게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편리함이 다만 편리함이 아니라 당황스러움, 불안함의 경험을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에게 이 변화는 유익할 것인가? 지난 대선에서도 각 후보들은 ‘4차 혁명’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우리나라가 4차 혁명 시대에 더 발전된 나라가 되도록 할 제안을 쏟아냈다.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의 전환률은 아직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지난해 국내기업 중 0.65%만이 4차 산업혁명 분야 신규 사업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2016년 기업활동조사).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은 모든 산업분야에서 고조되고 있는데, IT 영역에서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었던 한 후보는 “4차 혁명의 미래는 추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잘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했지만, 추측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잘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했다. 기술발전에 대한 기대감만 있었지, 실제로 그러한 변화에 대한 성찰과 비전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래서 어느 진보적 후보는 “당신이 말하는 4차 혁명에는 기술만 있고 인간이 없다.”라고 꼬집었었다. 4차 혁명을 두고 혼란스러운 우리의 지형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4차 혁명’의 시대는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여 높은 효율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4차 혁명’의 담론의 주제는 단지 기술발전이거나 변화된 미래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학계에서는 ‘포스트 휴먼(post-Human)’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4차 혁명’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며,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등이다. 또 ‘4차 혁명’으로 새롭게 형성될 인간의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인가? 아니면 더 불평등해질 것인가? 등과 관련된 윤리적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인류의 공동의 합의가 마련되지 못한다면, ‘4차 혁명’의 시대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보장을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은 ‘4차 혁명’에 대한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로 제기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이미 경고했다.
그는 ‘4차 혁명’의 시대에는 현재의 직업 대부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한 직업보다는 서비스, 관리, 프로그래밍, IT 직종이 미래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는 지금도 세계는 경제적 불평등의 도전에 직면하여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노동의 가치가 더 약화되고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에 필요한 기능이 요구된다면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4차 산업’의 열매를 공유하지 못하고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발전과 문제해결 능력만을 앞세우면,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은 ‘4차 혁명’은 다가오지 말아야 할 미래인 것이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4차 혁명’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소득과 자산은 사회 모든 구성원의 ‘공동의 유익(common good)’이 되도록 할 제도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유럽의 몇 나라에서는 ‘4차 혁명’ 시대를 내다보면서, ‘기본소득(basic income)’의 필요성을 실험하고 있다고 한다. 브라질(지자체), 미국(알래스카), 네덜란드(지자체), 아일랜드(국가), 핀란드(국가) 등은, 기술발전이라는 시대적 공유재를 사적으로 활용하여 발생한 이득을 사회로 다시 환원하는 통로로 ‘기본소득’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소 정치적 의제로 흐르기는 했지만, 유사한 시도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도되기도 했다. 이런 제도적 실험은 미래사회가 더 평등하고 더 정의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시도되었다.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이런 실험들이 ‘4차 혁명’ 시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완화하고 생산적인 미래를 나아가기 위한 준비과정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슈밥은 “혁명의 미래에는 우리 모두의 공동된 목표와 가치가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술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간적 환경을 어떻게 새로 만들어내는지에 관해 포괄적이면서 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권한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4차 혁명은 인간 본성의 정수인 창의성, 공감, 헌신을 보완하는 보완재의 역할을 하며, 우리의 인간성을 공동 운명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집단적 윤리의식으로 고양시킬 수도 있다. 후손들의 번영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결국 ‘4차 혁명’의 담론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주제, 그러면서도 자칫 소홀하여 이 담론의 본질인 그 주제는 바로 ‘인간의 가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요청이 발생한다. 하나님은 ‘4차 혁명’의 도전을 통해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청지기권을 지혜롭게 사용하시도록 요청한다. 인간이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 기대어,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을 때 도덕과 윤리의 부재를 경험한 20세기의 역사를 반추하여,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지 않는다면 인간의 청지기권은 돈과 권력을 향한 사적인 탐욕으로 변질될 것이 분명하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인간이 이러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공동의 선(common good)’을 증진시키는 사회적 제도와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자율적 힘과 이성만 의지해서는 인간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만들어가기가 어렵다.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이 이러한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이제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삶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인 것이다.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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