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문화선교연구원 선정 사회문화분야 10대 이슈-심층이슈3





심층이슈 3. 계속 불거지는 ‘갑질’ 논란

이슈
명사에 ‘질’이란 접미사가 붙는다고 해서 그 명사가 꼭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건 아니지만, 사람의 직책을 나타내는 말이나 어떤 행위를 지칭하는 명사에 ‘질’이 붙으면 비하하는 의미를 더하게 된다. ‘선생질’이 그렇고, ‘싸움질’이 그렇다. 근래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갑질’이란 말은, ‘갑(甲)’이라는 일종의 대명사에 ‘질’이란 접미사가 붙은 말이다. ‘갑(甲)’이나 ‘을(乙)’은 주로 공중 계약을 할 때,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보통 임대인을 ‘갑’으로, 입차인을 ‘을’로 표기하기 때문에, ‘갑을관계’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임대인과 임차인, 또 고용주와 피고용주라는,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계약 당사자 중에서 힘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갑’이란 명사에 ‘질’이란 접미사가 붙으면, 강자의 부당한 권력 행사나 직권남용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2016년이 ‘갑질’이란 단어를 우리 사회가 연습한 해였다면, 올 한해는 ‘갑질’이란 단어를 사전에 정식으로 등재해도 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된 해였다. 그만큼 연일 이슈가 되었다. 본사와 가맹점, 임대인과 임차인, 고용주와 피고용주, 연예인과 스텝, 피디와 매니저, 사단장과 공관병 같은,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가 연일 매스컴을 탔다.


지난 3월, 한 유명 프랜차이즈 피자의 가맹점주가 본사의 갑질을 고발하고 협동조합형 피자 프랜차이즈를 새로 설립해 점포를 차렸다가 이전 본사의 보복성 상행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7월에는, 참신한 브랜드로 알려진 프랜차이즈 회사 대표가 점주들을 모아놓고, 인신공격과 인격모독을 가해 지탄을 받았다. 한편 폭언을 견디다 퇴사한 제약회사 회장의 수행기사의 이야기가 한 취재기자에게 들어오기도 했다. 회장의 폭언이 적나라하게 녹음된 파일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육군 대장과 부인이 공관병 갑질의 장본인으로 밝혀졌고, 모 부대의 사단장의 갑질도 매스컴을 탔다. 바로 얼마 전에는, 한 종합병원이 재단 행사 장기자랑에서 간호사들에게 민망한 춤을 추게 한 사실이 밝혀져 비난이 받았다. 또 있다. 소비자가 왕인 시대에, 감정노동을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오히려 고객들의 갑질에 시달린다. 한 백화점은 진상 고객들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트레스 관리와 건강 보호 예산을 따로 마련했다고 한다.


본사가 가맹점에 겁박하고, 고용주가 고용인을 위협하며,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폭언을 일삼는다. 갑이 아무렇지도 않게 을을 대한다. 갑은 때로 우월감과 승리감 같은 감정을 챙기고 재정적인 이익을 취하지만, 을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서 모멸감과 수치심을 감수해야 한다. 을이 오랫동안 ‘갑질’의 희생양이 되면, 정신적인 탈진을 보이거나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물론 수직적인 상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갑질’을 개인의 부정적 성향으로 치부했던 때도 있다. ‘갑질’에 대한 고발을, 사회 불만세력이 작당해 조직과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누명을 씌우기도 했고,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의 불평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혹시 재정적인 손해를 보거나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해서 조직 안에 만연한 갑질을 묵인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고, 때가 되면 이들이 갑질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갑질’을 올해 사회 이슈로 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 안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을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활발해 지고, ‘갑질’을 제한하고 을을 살피려는 공동체의 자생적인 노력도 인상적이다. 또한 ‘갑질’의 혐의를 받아 오던 갑들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사람과 세계를 관계하는 자신의 방식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기독교적 해석과 제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불의한 권력에 희생되는 역할, 그러니까 을을 자처하신 분이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는 폭력과 폭언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고통당하는 을과 연대하셨고, 그들을 향한 각별한 사랑을 드러내셨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를 향한 하나님의 편파적인 사랑에 주목하면서, ‘갑질’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하고, 때로는 그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지난 여름에 출간된 『하청사회』라는 책은, ‘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이라는 부제를 단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을이 희생당하는 메커니즘 안에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라는 장치가 있다고 한다.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다. 건물주는 지대를 고정수익으로 챙긴다. 임차인은 지역 내 경제가 살아나거나 장사를 의욕적으로 하면 수익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지만, 정작 수익 이상의 비율로 뛰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건물주는 갑이 되고, 임대인은 을이 된다. ‘외주화’는 어떤가? 원청과 하청은 단순한 갑을 관계 이상인데, 하청업체가 납품단가를 낮추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원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이를 통해 원청업체는 수익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하청업체가 기대하는 낙수효과는 요원한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갑질 사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을의 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갑질’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보다 더 갑질에 대한 고발이 이어질 다음 해와 그 다음 해를 위해서라도, ‘갑질’을 정당화하는 법률적인 조항이나 정책의 허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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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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