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마틴루터의 설교론





* 미국교회의 상황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목회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설교자들에게 유의미한 통찰을 준다는 점에서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게시합니다. 


마틴 루터의 설교론

목회 초반에, 루터는 빈정거리며 비텐베르크의 목회에 있어서 ‘게으른’ 자신의 삶을 묘사했다.
“하루 종일 나는 편지만 쓴다. 수도원에서 설교하고, 식사 시간에 낭독하고, 도시 교회에서 매일 설교하도록 요청받고, 연구할 프로그램을 감독해야 한다... 바울에 대해 설교하지만, 여전히 시편에 대해서 자료를 모아야 한다... 얼마나 게으른가.” 여러 가지 많은 직무도 맡았지만, 루터는 설교 기계였다. 평생 약 4,000번의 설교를 했다. 그 중 오늘날 남아 있는 설교 원고는 약 2,300건이다. 평균적으로, 일 년에 120회, 3일에 한 번 씩 한 셈이다. 오늘날 대부분 목회자는 일 주일에 한 번 설교를 하는데 그것도 힘들어 한다.

모순적이게도, 루터는 결코 설교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루터는 1507년에 성직 서품을 받았지만, 당시 사제가 되었다고 하여서 설교를 다 하는 건 아니었다. 1530년, 루터는 설교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다른 사제에게 편지를 썼다.


“나도 자네만큼 설교단이 두렵다네. 하지만 나는 해야 해서 한 것이네. 설교해야만 했지. 아, 정말 설교단이 너무나 두렵네. 이 배나무 아래에서, 슈타우피츠와 열다섯 번의 논쟁을 벌였지. 논쟁을 벌이며, 설교 요청을 거절했어. 이런 논쟁이 득이 될 것은 없었네.”


설교에 대한 두려움과 설교를 철저히 거절했지만, 루터는 마지못해 요청에 굴복했다. 이 절대 절명의 순간으로 교회의 설교 방향을 바꾸는 목회가 시작되었고, 오늘날 목회자 설교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

이 기사를 통하여, 오늘날 막중한 영향을 끼친 루터의 설교 특징 세 가지를 알아볼 것이다.
설교는
1. 교회 예배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3. 평범한 사람들의 단순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


1. 교회 예배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루터는 설교를 비주류에서 예배의 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중세에 설교는 로마 천주교 미사의 한 부분이었고, 이것도 선택 사항이었다. 미사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초점이 예배와는 거리고 멀었고 대개 행위와 판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루터는 어렸을 때, 죄악으로 인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두려움을 강조하는 설교를 들으며 자라났을 것이다.

존 P. 돌런(John P. Dolan)은 이 시대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들의 설교에는 교회에 가지 않는 영혼들을 매단 불타는 나무, 사람을 파먹는 독수리, 부도덕한 사람에게 독을 쏘는 큰 뱀, 끓는 호수, 꽝꽝 얼은 늪지, 뜨거운 솥, 몸서리치게 하는 지하 감옥을 묘사하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성경 인용은 완전히 살아있고, 역사적인 본문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성경의 인물과 말씀은 왜곡되고 도덕적 확충을 위해서 편의상 말씀이 토막 나 있었다.”

루터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죄악감과 크게 씨름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당시 설교의 당연한 결과로, 루터는 그리스도의 초기 이미지를 ‘중개자가 아니라 심판자’로 묘사했다. 루터는 천주교 교회의 설교 방식에서 분리되어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신학이 나오게 되었다. 그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대부분의 설교 강조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루터가 성서 연구를 통하여 발견한 것처럼, 당시 사제들은 복음의 진실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는 행위가 아닌,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에베소서 2:8~9). 그래서 루터는 자신의 하루 설교에서 과장되었다 싶은 것은 모두 버렸고 성경에서 발견된 진리를 해석하는 데만 설교의 초점을 맞췄다.

루터는 당시 교회의 성찬식을 예배의 중심부로 하고 있었는데, 설교를 그 수준으로 올려놨다. 알프레드 E. 그래비(Alfred E. Gravie)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개신교의 설교를 로마 천주교의 미사 자리로 올려놓은 것이 바로 루터였고 종교개혁 중에서 교회 설교에 영향을 가장 강력하게 끼쳤다.”

루터는 설교를 재창조하지 않았지만, 개혁을 통해 성경에서 자신이 본 바를 여실히 드러냈다. “교회는 펜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입으로 지은 집이다”라고 선언했다. “성경에 감춰져 있었던 복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리라는 선포이후로, 말로 하는 설교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글을 쓰지도, 쓰라고 명하시지도 않으셨지만 입을 통해 말로 전하라고 하셨다.”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되었다. 루터는 믿음이란 말씀을 듣는 결과로 생각하여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에 설교의 중심을 두었다.

루터는 설교가 정말 중요해서 이렇게까지 썼다. “기독교 신자는, 아무리 짧은 시간이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없이 기도하지도, 모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가 없으면, 모이지 않는 게 낫다.”

루터는 설교를 예배의 중심으로 올려 두었고, 종교개혁에서 강조하는 바를 설교의 구심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루터는 설교를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설교를 돋보이는 자리까지 높여 놓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예배는 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이런 전통을 이어간다.

늦게 출석하는 사람들이 놓치지 않도록, 설교는 기본적으로 예배 찬양 후에 예배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고 가장 기본이 된다. 목회자는 기본적으로 설교의 힘을 크게 설교 평가단으로 평가받고 고용된다. 예배 찬양 인도자는 주로 설교를 빛내기 위해 노래를 선곡한다. 조명, 영상, 삽화, 안내, 무대 장식도 주로 모두 설교에 초점을 두기 위해 만들어진다. 루터가 예배에 설교를 구심점에 두는 데 힘을 실어준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루터는 그 당시 목회자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중세 시대의 목회자는 성경을 본문 외에서 가져왔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천주교 성당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게 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루터가 교황의 권위를 비판하였다고 조사받을 때, ‘성경에 결의한 자(doctor)’라는 입지에 서서 스스로를 변호했다. 루터는 ‘성경을 성실하고 순수하게 설교하고 가르칠 것을 성스러운 성경 앞에서’ 선서한 바 있다.

루터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교황의 권한보다 앞서 있음을 믿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종교개혁에서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했다. “나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글을 쓴 것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내가 자거나 먹고 마시는 동안... 말씀은 왕자나 황제가 주지 못한 피해를 교황에게 주어, 너무나 심하게 교황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씀이 이 모든 것을 했다.”

루터의 필사본과 메모를 읽으면, 성경의 특정한 하나의 구절, 보편적으로 성구집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 주로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루터는 “설교에서, 성경의 한 구절의 말씀을 입각해 사람들에게 가르쳐, ‘바로 이것이 설교가 다루고자 한 바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한 구절을 다루는 데 고통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루터는 또한 제자들에게도 이와 같이 가르쳤다.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물이 나올 때까지 막대기로 바위를 쳤다. 모세가 사막에서 바위로 다가간 것처럼, 어려운 구절에 다가가도록 가르쳤다. 루터 당시 성경의 오용은 만연하였기 때문에, 루터는 다른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옮길 것을 촉구했다.

1515년 설교에서, 그는 “성경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그 누구라도 성경을 잘못 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의 여러 구절은 쉽게 과장될 수도 잘못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따라야 한다. 그러면 성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잘못 이해할 일은 분명 생기지 않는다.”라고 하며, 제대로 된 해석의 척도를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루터는 성경의 적절한 해석의 기본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 했다. 다른 어떤 것도 안 된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전달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스도가 모든 성경 구절의 중심 메시지라고 믿고,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말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성경 이상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뿐만 아니라 설교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설교는 신과 인간 활동의 협력이라고 믿었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전하는 도구나 대변자이다.

그래서 루터는 “사람이 말을 하고 말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혀를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직접 살아있는 말씀을 우리 마음에 쓰는 도구로... 말씀을 사용하신다.”라고 하며, 설교의 위상을 높였다. 설교는 단순한 인간의 말 이상이다. 이것은 신의 권한이다. 반대로 보자면, 이것은 또한 설교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이 메시지를 주시지 않은 곳의 설교는 쓸모가 없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는 곳에는 설교가 전혀 되지 않거나 말씀이 공허하고 해롭다”라고 루터는 전했다.

그래서 루터는 “설교자는 하나님이 그의 입을 통하여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했다. 존 W. 도버스테인(John W. Doberstein)은 루터의 설교 모음집 서두에서, “결국은 하나님이 설교를 통하여, 설교 자체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엄중한 과제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루터는 말씀을 크게 읽거나 설교할 때 말씀이 살아난다는 이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론적으로,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 설교를 무시하고 남용되는 시기에 말씀 설교를 교회의 가장 중심부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어떤 교회들은 헤매고 있다. 어떤 설교자는 말씀을 비틀고 잘못 해독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려고 하고, 교회를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한 루터의 영향력에 감사한다.

 

3. 설교는 단순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분명해 보일 수 있으나 16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16세기 천주교 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설교자가 회중에게 설교할 때, 종종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과시하곤 했다. 평범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루터는 독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일 성경을 배부한 것으로 유명할 수 있지만, 또한 이들에게 독일어로 설교를 했다. 루터의 설교는 단순하게 전달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다 제외시켰다.

루터의 단순한 설교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왔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우화로 속히 이어 나가셨고 양, 양치기, 늑대, 포도원, 무화과나무, 씨앗, 들판, 경작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래서 가난하고 평범한 평신도들이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루터는 예수님을 따랐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해서, 되도록 단순한 본문으로 설교했고, 일상생활에 맞는 대화 형식을 적용시켰다. 의심할 여지없이, 바로 이렇기 때문에 루터의 반교회적 설교 방식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루터는 미사를 무시하고 사회적 엘리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학문적인 용어로 가득 찬 어려운 설교를 풀어가는 설교자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교회에서 고결한 주제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이기적으로 한 두 사람만을 기쁘게 하려고 설교하는 모든 설교자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내가 여기서 설교할 때는 보통 사람들의 상황에서 맞췄다. 40명도 되지 않는 의사나 부자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수백 명 수천 명의 젊은이와 어린이를 바라본다. 이들도 알아야 하기에, 우리가 헌신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내 말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면 나가도 좋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식을 가졌다는 이들을 신경 쓰지 말고 교육 받지 못한 젊은이와 아이들을 위한 설교를 해야 한다.”

루터에게 단순한 설교는 단순한 공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루터는 여전히 매우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문 연구에도 전념했다. 심지어는 설교 준비를 위해서 원어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믿음과 복음이 간단한 설교로 전달될 수 있지만, 이런 설교는 단조롭고 활기가 없다... 그러나 설교자가 이런 언어를 사용하면 설교는 생기를 얻고 힘이 생기고, 성경 전체가 환대 받고, 꾸준하고 다양한 단어와 연구로 믿음에 생기가 돈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연구를 권했으나, 설교 자체에 이런 원문을 사용하는 것은 경멸했다. 한때 이런 이유로 츠빙글리를 비난했다. “츠빙글리처럼 이렇게 많은 언어를 꺼내는 사람들은 정말 싫다. 그는 마르부르크 설교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썼다.”

그래서 루터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연구에 정통했지만, 결코 설교에 이런 용어가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루터는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교하는 것”을 선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문적 논쟁은 대학에서 하자. 거기서 라면 상대가 그 누구라도 격렬하게 논의할 수 있고 아무리 어려워도 대답할 것이다.”

루터는 학문의 범위를 대학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래서 루터에게는 단순한 설교가 단순하고 쉬운 설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단순하게 설교하는 것은 위대한 기술이다”라고 생각했다. 루터의 단순한 설교는 오늘날의 설교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는 외국어로 설교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학문적인 방법으로 설교하는 설교자를 찾기 힘들다. 루터는 예외의 인물이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루터가 선구자는 아니었다. 선구자는 바로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본보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우셨다.

 

결론

마틴 루터가 행한 천주교 설교의 개혁은 오늘날 개신교 설교가 이어나가도록 하는 데 오랜 영향을 끼쳤다. 개신교 설교단에서 성경을 펴는 설교자에 의해 예배가 상징화될 수 있게 된 것에는 바로 루터의 공이 크다. 설교를 예배의 중심이 되도록,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고, 단순한 말로 전달하는 데 루터가 큰 힘을 실어 주었다는 사실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고, 이 개혁가의 가르침과 예가 어떻게 오늘날 교회에 꾸준히 역사적으로 영향력을 준 파문을 일으켰는지 아직도 알아갈 것이 많다.

브랜든 힐거만(Brandon Hilgemann)
브랜든 힐거만은 훌륭한 설교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10년째 하고 있다. 이 시간 동안,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까지 다양한 규모의 교회를 섬겨왔다. www.propreacher.com에 여러 여정에서 얻은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쓰고 있다.  

 

원문은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How to Preach Well According to Martin Luther"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번역, 편집해 한국교회에 소개한다. 저작권은 churchleaders.com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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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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