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읽기 -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하우 아 유? 파인 땡큐 앤 유?  

기초 영화 회화에서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라고 배운다. 잘 지내느냐고 물어보면 큰 문제가 없을 경우 대체로 잘 지낸다고 말하고, 이어서 너는 어떻게 지내니라고 되 물으면 되는데, 왜 굳이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라고 하는 걸까? 

사실 다른 사람의 안부를 묻는 일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일이다. 비록 지극히 형식적인 대화의 한 부분이지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어봐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질문과 대답의 관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대화에는 인간관계의 기본이 들어있다. 인간은 서로의 안부에 관심을 갖고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돕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먼저 상대가 어떤 측면에서 도움이 필요한지를 아는 과정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자기 세계에 매몰되어 살아감으로써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어려워한다. 과거에는 부끄러워 잘 말하지도 않았던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문화를 자랑삼아 떠벌리며 살 정도다. 타인의 안부를 묻는 건 차치하고 자기 혼자의 삶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느낀다. 각자도생으로 표현되는 이런 각박한 사회에서 How are you? 라는 질문은 그것이 비록 관례적이고 형식적일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열 수도 있다. 사람은 타인의 안부를 묻는 존재일 뿐 아니라 그것에 어느 정도는 반응하도록 사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형식적으로 안부를 묻는 질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 외로운 사람들은 안부 인사만으로도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바로 이 점에 중점을 두고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건은 ‘아이 캔 스피크’에 함의된 이중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민원 건수만 8,000건, 주도면밀한 민원왕 영어를 배우다

<아이 캔 스피크>는 구청 직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로 잦은 민원을 제기하는 도깨비라 불리는 할머니와 그녀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를 보는 중에 이런 질문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도대체 도깨비 할머니 옥분(나문희)은 구청 직원들이 귀찮다 못해 그녀의 등장을 두려워할 정도로 왜 그렇게 잦은 민원을 제출하는 걸까?’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피해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원활동에 가장 앞장서서 나서는 것이나 시장의 상점 사람들의 잘못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단호하게 지적하면서도 또한 그들이 구청의 행정착오로 혹은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서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할 때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구청 직원들이나 사업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들을 코믹하게 전개한 걸 보면 단순히 일상에서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한 전략으로 연출되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누가 보더라도 진상고객임이 틀림없고 또한 정상이라 할 수 없는 할머니의 잦은 민원 행보는 관객들의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런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코믹하게 잔뜩 부풀리는데, 여기에 더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영어를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다른 젊은 수강생들과 달리 학습 속도가 늦어 힘들어하는 걸 오히려 선생님이 수업 진도가 빠르다며 다그치고 괴롭혀 결국 학원 수강 자체가 거부된다.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더는 없을 거라 여겨지는 노년의 그녀가 그토록 영어배우기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런데 구청에 새로 전입한 한 사람의 등장은 할머니의 영어 고민 뿐 아니라 구청 직원들의 염려를 말끔하게 해결해준다.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의 등장이다. 그는 할머니의 민원제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모든 절차를 원칙대로 처리한다.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민재는 도깨비 할머니와 닮았다. 거기다 영어를 배우려고 애를 쓴 것까지도 닮았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그 쓰임에 있어서는 달랐다. 민재가 원칙대로 하는 건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의 입장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공무원으로서 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을 겪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또한 그가 영어에 몰입했던 건, 비록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포기해야 했지만, 유학을 위한 것이었다. 영어로 말할 필요성이 매우 긴박했고, 공무원으로서 그리고 부모의 부재로 대신 동생의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자기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심축이 옥분에게 지나치게 기울어져 대조적인 캐릭터인 민재의 부분이 줄어든 건-어쩔 수 없이 편집되었을 수도 있겠지만-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비해 할머니의 원칙주의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리고 영어는 어디에 사용하려는 걸까? 이것은 영화 초반부터 대부분의 관객이 영화의 진행과 관련해서 갖게 되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이 두 질문을 갖도록 부추기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조심스럽게 풀어간다. 

한편, 민재는 미국에 사는 할머니의 남동생과 통화한 결과 남동생이 할머니를 알지 못하는 이유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사실을 할머니가 경험하지 못하도록 영어 학습을 중단하면서 의도적으로 할머니와 거리를 둔다. 민재와 할머니 사이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심각한 갈등 국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푸는 단서로 작용하여 관객을 놀라게 한다. 다소 비약이 없지 않으나 분위기를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옮기기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매우 돋보이기도 한다. 


'아이 캔 스피크'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

(이하 스포일러) 도깨비 할머니는 13세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온갖 고초 끝에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함께 끌려와 마음을 나누는 유일한 친구인 정심(손숙 분)의 구조로 가까스로 살아났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가족에게마저 외면당하는 처지로 홀로 긴 세월을 보낸 것이다. 혈육으로부터도 외면당한 옥분은 자신의 과거를 애써 숨기며 살면서도 최소한 생의 의욕을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낼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강박에 가까운 행위로 표출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옥분의 친구 정심은 일찍부터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증언에 앞장섰지만, 옥분은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숨기며 살아갔다. 그러나 베스트 프렌드인 정심이 치매에 걸려 더 이상 증언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자 옥분은 그 일을 마지못해 떠맡는다. 그녀가 영어 배우기에 집착한 까닭은 표면상으로는 미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남동생과 대화하려는 데에 있었지만, 사실은 언젠가 자신이 정심을 대신해서 증언대에 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통역의 실상을 알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영어를 배운 옥분은 미국의 청문회에서 일제가 자신을 군 '위안부'로 삼아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당당하게 증언할 수 있었다. 영화 제목 “I can speak.”는 바로 이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초반부의 코믹한 내용을 보고 코미디를 기대하며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후반부로 가면서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임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이 놀라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군 '위안부'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귀향>이 주는 무게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위안부'의 실상을 느낄 수 있게 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우슈비츠를 희극화 했다고 비난을 받았으나 우리의 기억 속에 명작으로 남아 있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77)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다. 관객이 그 주제의 무게에 눌려 압도당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아픔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했을 뿐 아니라 또한 배우들 역시 절제 있는 연기력으로 관객들이 큰 심리적인 부담이 없으면서도 감동적으로 '위안부'의 실상의 단면을 볼 수 있도록 했다. 


"How are you?"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도깨비 할머니로 통할 정도로 구청직원들에게 부담스런 고객이 되고 또한 정신이상자라 불릴 정도로 시장 사람들에게 원칙을 주장하는 이유는 민재 동생을 통해 설명되고 있는데, 외로움 때문이었다. 자기 안에 깊이 숨겨놓은 비밀을 간직한 사람으로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원칙주의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놓고 마침내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 캔 스피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하나는 자신의 존재감을 더는 도깨비 할머니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드러내며 존재감 있게 산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힘겹게 배운 영어를 통해 자신이 직접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영화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가 이토록 자신의 숨겨진 과거에 대해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물론 절친한 친구인 정심이 치매에 걸려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것을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잘 지내느냐?(How are you?)’고 물어주는 민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지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라. 일본군 '위안부'로 등록되지 않아 미국의 청문회에서 증언을 읹어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민재는 할머니가 군 '위안부'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건네기 위해 서둘러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러고 한 마디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옥분을 보고는 ‘How are you?’를 묻는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안부를 물어오는 질문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더는 홀로 외롭지 않은 인생임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말할 수 있었음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결국 "How are you?"라는 질문은 그녀의 강박관념을 해결해줄 뿐 아니라 존재감을 확인하고 또 드러낼 수 있었으며 자신 있게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어서 세상에 말을 걸면서 세상을 하나님 앞으로 초대하는 교회의 과제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이 자기 자신 안에 밀폐되어 있지 않도록 말을 걸어오심으로써 세상을 자기 밖으로, 곧 하나님 앞으로 또 그분 안으로 불러내신다. 이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통해 말을 건넴으로써 그들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 있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최성수 박사가 본 <아이 캔 스피크>는?   

기독교적 가치 (4.0)          작품성 (4.0)       대중성 (4.5)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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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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