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7] “뭣이 중헌디?” 기독교 문화콘텐츠와 돈의 문제




이 시리즈를 시작한지 벌써 7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여 년간의 문화예술 관련 경험을 돌아봤을 때 기독교문화콘텐츠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돈'이다.

Money! Money! Money! 사실 돈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화두이다. 최근 ‘쇼미더머니6’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래퍼 ‘넉살’은 그의 노래 ‘Skill Skill Skill’에서 래퍼로 사는 것과 ‘먹고사니즘’(?) 사이에서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said

기술을 배워야 돈을 벌지

세상이 변해도 기술은 변함없지”


물론 크리스찬 아티스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글에서는 돈과 기독교콘텐츠에 대해 논하면서 세 가지 측면 즉, 가격(Ticket), 수입(Income), 제작비(Production Cost) - T.I.P.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렇게 첫 글자를 따서 단어를 만드는 진부한 방식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1. 가격 Ticket

좋은 기독교문화콘텐츠가 나오기 위해서 반드시 없어져야할 적폐는 교회 안의 공짜문화이다. 이는 소비자 관점과 창작자 관점,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뉠 수 있다. 

먼저는 소비자들이 공짜를 원하는 문화를 지양해야한다. 간혹 “하나님을 찬양하는 ccm 가수가 왜 돈을 받아요?”라고 하는 질문을 듣는다. 그런 논리라면 모든 목사님들은 사례비를 받지 않아야 하고 성경책은 서점에서 무료로 나눠줘야 한다. 보통 ccm 음반 하나 제작하는데 최소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까지 든다. 찬양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음반을 불법복제해서 모두에게 공짜로 나누어 준다면 그 가수는 2집을 낼 수 없을 것이다.


* 현대 음반 산업의 비애를 그린 이미지 : 45만 달러짜리 콘솔에 1만2천 달러 마이크를 연결해서 각종 고가 장비로 녹음하지만, 사람들은 만 이천 원짜리 싸구려 이어폰에 mp3 음질로 듣는다. 덧붙여 음원을 공짜로 불법공유 한다.


또한 창작자들도 공짜로 자신의 콘텐츠를 나누어주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 부분이 더 중요한데, 크리스찬 아티스트의 경우 착한(?) 마음에 자신의 공연에 돈 내고 오라고 주변에 홍보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왠지 장사하는 것 같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것 같아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정말 프로 아티스트라면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꼭 크리스찬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일본 같은 경우는 전국에 수천 개의 라이브클럽들이 있는데 매일 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밴드들의 공연이 일본음악계 발전의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인디밴드들은 적극적으로 주변 지인부터 시작해서 자신들의 공연 티켓을 유료로 판매한다.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클럽에 설 수 없는 냉정한(?) 구조가 장기적으로는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문화공간을 운영하면서 수백 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내가 느끼는 점은 요즘 사람들은 싸게 판다고 더 많이 공연 보러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료티켓을 발행할수록, 또는 티켓 가격이 쌀수록 공연을 얕잡아 보고 오지 않는 경향마저 있다. (예를 들면, 티켓 가격이 5천 원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학생들의 공연 내지는 아마추어의 공연 정도로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취향이 확실하다. 정말 본인이 보고 싶은 공연이라면 10만원이라도 내고 오지만, 관심이 없으면 공짜표를 줘도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크리스찬 문화콘텐츠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정당한 가격을 매기고 당당히 소비자들에게 요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그렇게 모인 금액으로 더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재투자 하면 될 것이다.



2. 제작비 Production Cost

이 부분이 오늘날 크리스찬 문화콘텐츠에 있어서 가장 난점 중에 하나이다. 간혹 “과거에는 교회문화가 세상문화를 주도했는데 요즘은 교회문화가 너무 뒤떨어져 있다.”라는 푸념을 듣곤 한다.(이에 대해서는 정말 과거에 주도했는지부터 따져 볼일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격차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오늘의 일반 대중문화시장에서는 제작비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아이돌 음반 제작에는 억 대 비용이 들어가고 영화는 저예산 로맨틱 코미디조차 수십억이 들어간다. 어떤 교회, 어떤 기독교 단체가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홍보비는 제외한 제작비만 놓고 왔을 때의 이야기다. 일반 홍보전문가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쪽에서는 홍보비와 제작비를 1:1로 놓는다 했다. 영화제작비가 30억이었을 때, 이 영화가 되겠다 싶으면 홍보비를 30억 쓴다고 했다.)

본인이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근무할 당시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창작뮤지컬 제작이었다.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인력들과 한 해에 한편씩 기독교뮤지컬을 제작해서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도 올리고 교회순회공연도 진행했다. 좋은 피드백도 있었지만 아쉬움의 소리도 많았다.

“왜 기독교 뮤지컬은 이렇게 후지냐? 요즘 한국 뮤지컬이 저렇게 화려하고 멋진데. 이러면 누가 보겠느냐?”

라고 독설을 날리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럴 때 나는 설명 드렸다. “3천만 원짜리 반지하방이랑 3억짜리 아파트랑 어떻게 비교하겠습니까?” 정말 딱 그 정도 비율이었다. 대학로 소극장에 올리는 작은 뮤지컬도 최소 제작비가 억대가 넘는다. 교회들이 십시일반 정말 귀하게 모은 제작비였지만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대의 때깔은 들인 돈에 비례한다.

(2011년도 불교 조계종과 MBC가 합작으로 제작한 뮤지컬 ‘원효’는 제작비가 50억이었다. 크리스찬으로 알려진 가수 이지훈이 원효 역을 맡았다. 우리도 제작비 50억을 들일 수 있다면 이지훈을 섭외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조계종에서 대량으로 단체표를 구매해주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기독교계에서 제작비 50억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은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없다. 일반시장에서의 제작비는 더욱 규모가 커질 것이고 물량싸움은 더 판이 커질 것이다. 반대로 교회는 오히려 재정적으로 어려워질 확률이 높다. 

개인적인 제안으로는 크리스찬 소비자들이 이런 점에 대한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한 듯하다. 물량과 외형적 화려함만 보고 일반시장의 블록버스터를 칭찬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독교콘텐츠를 손가락질하면 안 될 것이다. 기독교콘텐츠 안에 있는 작지만 반짝이는 가치를 알아봐 주어야 한다.

또한 아티스트들 자신도 이런 한계를 정직하게 직시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0년대  ccm 시장이 나아갔던 방식 - 우리도 가요계처럼 화려한 무대, 많은 제작비 투입해서 그 모양을 내보자 - 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 제작비와 물량으로 승부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여기서 윤종신의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이 주는 가르침을 되새겨 볼만하다. 윤종신의 ‘좋니’라는 곡은 아이돌음악을 제치고 8월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top100의 유일한 40대 가수, 700만원 의 저예산(!)으로 만든 곡.(그렇다. 가요계문법에선 저예산이다. 하지만 ccm에선 어떨까?)

그는 거대자본이 주도하는 차트 중심의 음악계를 뚫고 나올 방법으로 ‘월간 윤종신’을 시도했다. 차곡차곡 쌓아가기를 7년, 그 결과는 빛을 발했다. 



크리스찬 문화콘텐츠야말로 거대자본이 없이도 현대 소비자들을 매혹할 수 있는 게릴라적인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3. 수입 Income

얼마 전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의 유명한 컨트리 가수에게 기자가 물었다.


“당신처럼 컨트리 음악의 대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먼저 안정적인 직장을 잡으시오.”

(구글링으로 출처를 찾아봤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누구인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컨트리 음악이 인기인 미국에서도 그런가보다. 도입부에서 한 랩퍼 ‘넉살’의 이야기처럼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늘 이 땅에서 뮤지션으로, 영화인으로, 예술가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크리스찬 아티스트들에게는 하나님이 생계를 책임져 주실 거라는 묘한 믿음(?)이 있다. 물론 그런 믿음은 귀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많이 경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크리스찬 아티스트의 생계 문제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ccm을 예로 들자면 90년대 부흥기에는 찬양사역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꽤 있었던 듯하다. 그중에 유명한 분들은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교회에서 집회 끝나면 CD 한 장에 만 원씩, 한 박스 100장씩 팔리고 했다니 지금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교회들도 부흥기였기에 ccm 사역자들이 교회에서 찬양사역자 등으로 사역지를 구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듯하다. 하지만 요즘 체감하는 경기(?)는 정말 바닥이다. 내가 알기로는 찬양사역으로 생계를 큰 부족함 없이 (평균적인 월급쟁이 급여수준으로) 유지하는 분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아마도 한 손으로?)

그래서 많은 크리스찬 뮤지션들이 시험에 들고 자신의 꿈과 사명을 포기하는 경우도 본다. 하지만 어찌 보면 받아들여야할 현실일 수도 있다. 물론 찬양사역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시대(또는 사회 환경)가 특수한 경우이지, 그것을 일반화하여 당연히 생각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ccm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형성된 곳이 미국, 호주, 영국, 그리고 한국 정도라고 한다. 그럼 나머지 국가에서 찬양사역은 불가능한 것인가.

‘주의 자비가 내려와’라는 곡을 작곡한 유명한 찬양사역자인 데이빗 루이스는 처음에 자신과 멤버들이 그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걸로 생계를 해결할 거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요즘 EDM 스타일로 찬양의 스타일이 좀 옮겨간 듯 하며, 오히려 빈민 구제사역 등에 힘쓰고 있다.)



David Ruis의 찬양 I will give all my worship '경배하리 내 온 맘 다해'


그러므로 나는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크리스찬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보라고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너무 쉽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 주변의 많은 크리스찬 뮤지션들이 이미 그렇게 활동하고 있다. 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방식에 장점이 많이 있다. 지속가능성과 안정적인 작품 활동이 가능하다. 진도가 조금 느려서 답답하긴 해도, 긴 호흡으로 천천히 걸어간다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상 어찌 보면 선택이 아닌 자연스런 부분인 듯도 하다. 목회자도 이중직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역사상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다.



“손님이 있을 때는 통행료 징수원

손님이 없을 때는 화가 - 앙리 루소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

밤에는 소설가 - 프란츠 카프카


낮에는 막노동꾼

밤에는 시인- 찰스 부코스키”


(from ‘안녕 동키호테,’ 박웅현, 민음사)





이제 어떤 의미에서 ‘돈’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문화예술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거꾸로 ‘돈’ 없이도 귀한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크리스찬 문화콘텐츠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주님의 말씀처럼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하는 영역이 바로 여기이다.

 

 글쓴이 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이라는 작은 클럽의 사장이자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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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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