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영화의 고전들 <살로메>(1954): 평화인가 폭력의 지속인가?



 

살로메는 악녀였나?

 

문학과 예술계에서 살로메는 꽤 유명한 인물이다. 매혹적인 춤으로 왕 앞에 선 살로메와 쟁반에 얹은 세례요한의 목을 들고 있는 살로메의 모습은 서양회화에서 오래도록 인기 있는 소재였다. 카라바조의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들고 있는 살로메>(1609-1610)처럼, 예언자의 잘린 목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살로메를 그려 연민과 두려움을 표현해낸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귀스타브 모로의 <환영>(1874-1876)처럼, 살로메를 에로틱한 댄서로 그린 작품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팜므 파탈의 원형으로서의 살로메를 만든 데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1893)의 공이 크다. 여기서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말에 맹종하거나 죽음 앞에서 당황하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우물에 갇힌 세례요한에게 한눈에 반해서 그를 소유하려 한 요부였다. 와일드의 살로메는 결국 세례요한의 잘린 목에 키스하다가 자신을 탐했던 헤롯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의 유혹자가 되었다. 1905년 초연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원작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차례로 카라바조의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들고 있는 살로메>, 귀스타브 모로의 <환영>,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표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실황사진이 담긴 DVD 표지


성경에서는 어떨까? 흥미롭게도 살로메는 예언자의 목을 왕의 생일잔치 답례물로 내놓게 한 업적(?)에 비하면 존재감이 미약한 모습으로 복음서에 등장한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14(1-12)과 마가복음 6(14-29)에서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딸이나 소녀the girl’로 불리고 있을 뿐이다.

헤로디아가 전남편 빌립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살로메는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추어 왕을 기쁘게 했고, 헤롯은 그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다 주겠다는 맹세를 한다, 소녀는 거침없이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라고 말했다.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14:8)” 한 답이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을 두고 세례요한이 그 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다니므로, 헤로디아가 그를 몹시 미워했던 까닭이었다. 예수님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 세례요한은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요컨대 살로메 이야기의 원전인 복음서에서 살로메는 모친의 사악한 계략에 동조한, 하지만 여전히 엽기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권력의 희생양’, 할리우드의 살로메

 

윌리엄 디터리의 1954년 영화 <살로메>는 진짜 악녀로 엄마 헤로디아를 지목한다는 점에서 와일러의 살로메보다는 성경과 더 가깝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 살로메를 기독교인인 로마 군인과 사랑에 빠지게 하고 회심의 서사를 덧입힘으로써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을 고수한다. <삼손과 데릴라>(1949)<솔로몬과 시바의 여왕>(1959)처럼 제목부터 여성을 주인공으로 명시한 성경 고전 영화들이 그랬듯이, 이 영화 <살로메>도 사랑하고, 회개하고, 결국 영웅을 돕겠다고 나선, 요염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영화에서 헤로디아(주디스 앤더슨 분)는 살로메(리타 헤이워드 분)가 어릴 때 그를 로마로 보낸다. 헤롯(찰스 로튼 분)의 방탕함을 알고 딸을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로마에서 자유분방하게 살던 살로메는 티베리우스 황제(세드릭 하드위크 분)의 조카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황제의 결혼 반대와 뒤따른 추방령으로 갈릴리로 돌아오게 된다. 소녀 살로메는 이제 여성이 되어 있었다. 의붓딸 살로메에 대한 헤롯의 욕망을 눈치 챈 헤로디아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헤롯 앞에서 춤을 추라고 권한다. 이 일은 살로메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왕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곧 왕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왕비인 자신의 어머니와 자리를 다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헤로디아는 왕좌를 지켜 살로메에게 물려주는 것 외에는 중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살로메를 설득한다. “왕좌는 내게 전부란다.” 헤로디아가 말한다.

왕좌가 전부인 사람은 또 있었다. 생전의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왕좌를 포기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권했을 때, 헤롯은 이렇게 답했다. “그럴 순 없지. 그건 나의 전부야.” 성경에 따르면 헤롯은 세례요한을 죽이려했지만 민중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기 때문에 민중을 두려워해서 선뜻 죽이지 못했다. 영화에서 헤롯은 세례요한이 옳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권력을 잃을 것이 두려워 죽이지도, 지지하지도 못하고 그저 가두어둔다. 그는 자신이 세례요한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을 위해서 딸까지 팔 기세인 모친에게 경악하여, 살로메는 클라우디우스의 편에 서서 세례요한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살로메가 그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오늘날의 스트립댄스와 유사함)’을 춘 것은 요한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뜻밖의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결국 살로메를 헤롯 앞에서 춤추게 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요부로 만든 것은 권력을 향한 왕비와 왕의 공세/수세적 욕망이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의 목을 내놓으라는 사악한 요구는 살로메를 통과하지 않고 헤로디아의 입으로 직접 발설된다. 희대의 스타 리타 헤이워드를 악명으로부터 구해내면서도 약 6분 동안 베일을 하나씩 벗어내는 그의 춤사위(리타 헤이워드는 무용수 출신이다)를 관객들이 죄책감 없이 즐기도록 배려한 50년대 할리우드 내러티브의 탁월한 전략이었다.

 

 


그들에게 평화는 무엇이었나?


헤로디아의 노골적인 권력욕과 대조되는 헤롯의 두려움과 우유부단함은 이 영화가 남성들을 평화의 주체로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헤롯과 빌라도, 클라우디우스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평화를 언급한다.

가장 먼저, 영화를 시작하면서 <살로메>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 방침을 밝혀 둔다. 줄리어스 시저의 아들 티베리우스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으니 부친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하는 대신 물려받은 것을 잘 지키기 위해 평화를 유지하는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가 본디오 빌라도를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한 이유도 그 지역의 소요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편, 클라우디우스는 스스로 로마가 금지하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적극적으로 기독교도를 보호하지도 박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매번 외교적인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빌라도와 헤롯에게 간언했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황제와 분봉왕과 총독과 사령관, 그들은 모두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들 각자에게 평화란 과연 무엇이었겠는가?

백성들의 폭동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례요한을 당장 풀어주어야 한다는 클라우디우스의 조언에 헤롯은 세례요한을 가두어두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갇혀있는 매순간이 폭력이고 소요입니다.” 클라우디우스의 답이다. 가장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폭력적인 억압의 순간임을 로마 군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알고 있었다.

폭력의 지속이 거짓 평화를 강요할 때, 참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아는 이 땅의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는 과연 평화로운지, 지금 이 땅에서는 어떤 폭력이 평화로 위장한 채 지속되고 있는 중인지, 우리는 무엇을 보호하려고가두어두고 있는지..., 수많은 질문이 오고가는 대목이다.

그나저나 헤롯으로 하여금 기어이 예언자의 목을 내놓게 해서 구약시대를 마감한 여성이 살로메라는 이름을 지녔던 것은 역사의 반전인가. 살로메는 히브리어 샬롬(shalom: 평화)’에서 나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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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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