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하나님 나라 : 칼빈주의, 칼빈대학, 그리고 베시 디보스








베시 디보스가 미국의 새로운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미국 내 큰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내 생각에도 그녀의 경험이나 전문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타당한 우려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의 임명에 대한 대부분의 논란이 칼빈주의와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CRC)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특히 그녀의 종교적 배경을 교육정책과 동일시 여겨 비판하는 태도는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디보스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CRC를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CRC의 근원적 가르침, 그녀의 세계관이 기인하고 있는 종교적 뿌리, 그리고 종교가 인간의 행위와 신념을 어떻게 형성시키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디보스에 대한 중요한 사안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녀가 바로 CRC의 성도였고 칼빈대학(Calvin College)에 다녔다는 점이다. 뉴스위크지(Newsweek)의 알렉산더 나자리안(Alexander Nazaryan)에 따르면, “미국의 교육부 장관으로서 디보스가 앞으로 펼칠 일들은 바로 예수의 대리인으로 살면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4천 명의 학생이 다니는 그녀의 출신 학교를 보면 그 사실이 드러난다.” 마더존스지(Mother Jones)의 크리스티나 리즈가(Kristina Rizga)의 글을 보면, “서부 미시간 주의 네덜란드계 이민자 역사에 대한 분명한 공부 없이 디보스와 프린스 일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CRC에 대한 전방위적인 경계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CRC를 다녔다. 그리고 칼빈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나부터 디보스가 표명한 교육정책들에 대해선 염려되는 부분들이 있다. 디보스의 의견대로 나 또한 기독교 교육을 지지하고 나의 자녀들 또한 기독교 학교에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 기독교 교육에 대한 CRC의 기준과 사상들이 미국 공교육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CRC는 바우처 제도(vouchers), 챠터 스쿨(charter schools, 대개 비기독교임), 영리 목적의 학교, 자유시장체제의 교육정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칼빈대학 출신의 여러 졸업생들이 디보스의 정책에 대해 반대서명을 제출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들은 모두 디보스처럼 칼빈대학과 CRC의 산물이자 증인이지만 그녀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선 반대하는 부분들이 많다. 종교적 전통이 위험한 이유는 특정한 혹은 예측 가능한 결론이 도출되기 훨씬 전부터 굉장히 단단한 결속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디보스가 2001년에 했던 인터뷰의 내용은 반대세력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마도 이 이유로 사회가 들썩였을 것 같다. 그때 디보스는, “우리의 열망은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다(Our desire is to advance God’s kingdom)”라고 언급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권 국가 출신의 이민자 및 난민들에게 입국제한을 엄격히 시행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수용하겠다는 공권력을 실행시키며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다.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신정정치를 펼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오해는 한편으론 당연해 보인다. 안타깝지만 내 생각에도 디보스의 임명과 그녀의 측근들은 이 불안감을 고조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2001년에 언급된 발언은 여러 곳에서 경고의 신호로 여겨지고 있는데 뉴스위크는 저 문구를 기사의 부제로 사용했고, 마더존스도 글의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베시 디보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의 학교를 이용하고 싶어 한다.” 뉴욕 타임즈의 미쉘 골드버그(Michelle Goldberg)는 디보스의 하나님 나라의 발전을 예로 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신정정치에 가까운 행정부를 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디보스가 교육부장관으로 확정될 경우 미국의 공교육이 일종의 종교학교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덧붙였다.


CRC에서 자라고 칼빈대학을 다녔던 나는 디보스가 했던 발언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들을 자주 듣고 자랐다. 칼빈주의는 학생들에게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라는 말 또한 수시로 듣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의 밖에 있는 사람에게 저 말들은 아마도 신정주의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 가르침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참된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조금 다르다.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다. 저 말의 광의적인 개념을 따져보면 우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은 섬김 중심적인 비전과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칼빈대학의 학생들은 섬김을 위해 부름 받았다고 배우되 그 섬김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 또한 안다. 예를 들면 칼빈대학의 학생들은 인종의 화합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에 주기적으로 참여한다. 왜냐하면 인종간의 화합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칼빈대학의 교수진들이 Turning Point U.S.A.라는 미국의 NGO에 가입서명에 동참하여 주의할 교수 명단(professor watchlist)”에 동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명단은 체계적/제도적 인종차별을 수업시간에 주입하는 극단적인성향의 교수 명단이다.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칼빈대학의 교수진들을 앞서 입을 열었고 제도적 인종차별은 꽤 심각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개선될 점임을 주장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적 정의와 돌봄이다. 미국의 플린트 시와 같이 깨끗한 수도시설이 이슈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향상된 교육환경 및 교육제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개선사항이 될 수 있다. 각각의 문제에 대한 방법론을 두고 여러 다양하고 격렬한 논쟁이 펼쳐질 수는 있지만 이런 사안들을 종교적인 언어로 포장했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여러 기독교의 교파들이 모두 사용하는 주기도문에 항상 나오듯이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선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있겠지만 모든 기독교인이 매일 같은 주기도문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하는 것처럼 디보스의 발언은 유별난 것도 지나치게 종교적인 것도 아니다.


베시 디보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독교적인 제도를 독려하여 모든 미국인들이 순종하거나 개종하길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심이 가지는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건 칼빈대학에서 배운 것은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보도된 뉴스기사들을 보면 디보스의 정책을 CRC에 기반한 것으로 보는 것은 매우 좁은 시야로 종교적 전통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칼빈주의를 통해 가장 먼저 배우는 부분은 예정론이다. 이에 대해 뉴스위크는 칼빈주의는 창조주의 예정론을 따르고 있어서 하나님이 이미 모든 죄인은 지옥으로, 그리고 은혜를 얻은 자들은 선택받은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고 본다. , 구원은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상이라고 하였다. 이 설명은 예정론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지만 이 글에선 다루지 않겠다. 폴리티코지(Politico)의 잭 스탠톤(Zack Stanton) 또한 그의 글에서 비슷하게 칼빈대학과 CRC를 예정론에 입각하여 설명한다.


예정론과 베시 디보스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뉴스위크의 기사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폴리티코 기사는 1905년 막스 베버(Max Weber)의 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며 칼빈주의와 자본주의를 설명했다. 그리고 디보스가 그녀의 친정과 남편 일가를 통해 부유해질 수 있었던 부분도 이 논리를 토대로 설명한다. 베버의 이론은 지난 몇 세월을 거쳐 학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최근에 일었던 비판은 천국의 상품 (Heavenly Merchandize)”의 저자인 마크 발레리(Mark Valeri) 교수인데 칼빈주의와 자본주의의 복잡하고 난해한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CRC는 자유시장 체제의 보수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베시 디보스의 회사 암웨이(Amway)나 그들의 부를 지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마도 예정론이 이렇게 뜨겁게 주목받는 데엔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예정론의 교리를 신학적 문맥으로 관찰해보면 비기독교인들에게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있다. CRC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의 종교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예정론은 오랜 전통을 고수하며 지켜진 기독교 종교를 비합리적인 사이비 종교로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예정론에 입각하여 칼빈주의를 거부했던 19세기 문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칼빈주의자들도 예정론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CRC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각을 전통 신학에서 이민 역사로 돌릴 필요가 있다. 미시간 주에 정착했던 초기의 네덜란드인들은 네덜란드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건설하였다고 마더 존스(Mother Jones)의 기자 리즈가(Rizga)는 언급했다. 그리고 그들의 고향에서 그랬듯이 교회는 본질적으로 정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며 농민들의 모든 생활을 관리하였다. 미시간이 미국의 주()로 포함된 것은 1837년이라는 점에서 리즈가가 본질적 (essentially)으로 정부의 역할을 했다라는 단어가 어떤 뉘앙스인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만약 교회의 영향력이 꽤 컸다는 것이라면 동의가 되는 통찰이지만,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미국이나 주정부의 법을 거부하고 그들만의 법제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위와 같은 해석은 교회가 너무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 대한 모순을 짚어낸다. CRC의 창립자들이 초기 미국에 신정정치를 도입시켰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혀 합의되지 않은 사실무근의 주장이고 디보스를 신정주의자의 일원으로 보는 억측이 된다.


또한 디보스가 다른 사상과 이념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서 칼빈주의의 정통을 계승한 것처럼 여러 언론들이 오보하는데 디보스의 여러 정책들과 생각들은 칼빈주의나 칼빈대학과는 무관한 것들도 많다. 한 가지 더 짚고 갈 사안은 베시 디보스는 더 이상 CRC의 성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50년간 그 일원으로서 살아왔고 칼빈대학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초교파의 복음주의 교회이자 대형교회인 마스 힐 성경 교회 (Mars Hill Bible Church)의 성도이다.


교회들 간 큰 차이가 있겠냐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적거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CRC 일원들을 당혹케 하는 요소일 것이다. 개혁교회의 정통을 유지해 온 교회들은 오래된 신학문서들과 목사, 철학자, 그리고 사상가들이 모여 끝없는 논의와 깊은 탐색을 150년 이상 유지해온 교파이고 그들은 미국 전역의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모아 연례회의를 개최하며 여러 가지 신학적 쟁점들에 대해 꾸준하게 논하며 적용 및 개선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교파적인 교회와 CRC를 비슷한 부류로 보는 것엔 큰 문제가 있다. 물론 기독교 개혁교회에 다니는 복음주의자들도 있겠지만 내가 칼빈을 따를 때 우리들 스스로 복음주의 (evangelical)”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적이 없다. 우리는 개혁주의 (reformed)”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맞았다.


물론 마스힐 교회가 전혀 다르지는 않지만 CRC와 같다고 볼 수 없다. 다른 대형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마스힐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에 집중하는 교회들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비-칼빈주의적인 신학적 주장이 디보스의 정책과 입장을 이해하는데 더 일리가 있다. 디보스의 생각들을 살펴보면 그녀 또한 자유의지와 기업의 자유행위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안은 마스힐 교회에도 디보스와 반대할 복음주의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만약 베시 디보스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 종교적 전통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싶다면, CRC의 안과 밖을 모두 다 봐야한다.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혼자서, 고립된 채로 단일의 종교전통을 따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종교로부터 받는 영향은 여러 개의 전통들은 물론 광범위하게는 그 사회의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베시 디보스의 경우 1840년대의 네덜란드 이민자들에게서 종교적 영향을 찾는 것보다는 20세기 중반 미국에 등장한 복음주의 신학과 자유경제 시장 체제 안에서 몸집이 커진 기업의 자유행위에서 찾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케빈 크루즈 (Kevin Kruse)의 책인 하나님 아래 한 국가: 미국 기업이 미국 기독교를 형성하다”(One Nation Under God: How Corporate America Invented Christian America)를 보면 20세기의 경영자들과 몇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어떻게 타협점을 찾았는지 밝힌다. 이 책은 특히 양측의 협력을 통해 어떻게 디보스와 프린스 일가가 재산과 부를 축척하게 되었는지 당시 상황들을 설명한다.


아마도 디보스가 그녀의 칼빈주의 뿌리에서 취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회 참여라는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칼빈주의가 아닌 보수적 복음주의 문화에서 취한 부분은 사회 참여의 방법론일 것이다. , 경쟁과 기업의 자유 행위를 통한 사회 참여이다.


종교에 대한 글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뉘앙스를 굉장히 신중하게 심사숙고한 뒤 쓰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런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폴리티코(Politico)의 로라 터너(Laura Turner)는 디보스와 기독교에 대해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디보스가 받았을 영향들을 잘 설명했다. 그 이전의 글들은 CRC의 본질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베시 디보스를 설명하는데 CRC를 사용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디보스를 설명하는데 CRC를 교차적으로 인용하며 결국 정치적 입장과 종교적 배경을 정확하게 분리하거나 간파하지 못했다. , 정치적 견해를 오로지 종교에만 기인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종교인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다. 여러 신념과 전통에 기반한 다양한 관점과 행위가 관련되어 있으며 세속적 인생과 문화에도 꾸준히 영향을 받는다. 세속성과 종교성은 모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생각보다 꽤 공통적인 영역이 있다. 목회자의 책장에 꽂혀 있는 교리책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하고 복잡한 게 종교이다. 그리고 종교적 삶은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한 이민역사보다 훨씬 더 근원적으로 얽혀져있고 풍부하다.


오늘의 CRC 내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공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정치당파와 상관없이 함께 앉아 주일예배를 드린다. (이는 분명 현대 문화에서는 흔하게 목격할 수 없는 점일 것이다.)


언론가와 기자들이 그들이 미지했던 문화와 종교에 대해 연구하는 성실함에는 긍정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만약 더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싶다면 대중들의 우려에 확신을 주는 방향에 치우쳐진 연구와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근거들을 수집하고 싶은 유혹과 편리성에서 멀어지기 어렵긴 하다. 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 종교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지는 것은 나의 적을 절대 악으로 보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언론의 할 일은 독자들의 편견에 섣부른 동의와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바른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분명 이게 더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미국이 두 개의 당파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는 시점에서 기자와 언론은 더 큰 책임을 갖고 임해야 한다.

 

Abram Van Engen(아브람 반 엥겐)은 세인트 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John C. Danforth 종교와 정치 센터의 교직원이다. Religion and Politics에 게시된 "Advancing God's Kingdom: Calvinism, Calvin College, and Betsy DeVos"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 수정해 한국 교회에 소개한다. 저작권은 Religion and Politics에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의 소식 받기

* 페이스북 www.facebook.com/cricum << 클릭 후 페이지 '좋아요'를,

* 카카오스토리 story.kakao.com/ch/cricum << 클릭 후 '소식 받기'를 누르시면 새롭고 유익한 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시사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