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공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의의 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한국 정치사의 격랑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사인(私人) 최순실이 공정해야 할 국정을 농단했고 대통령은 공평무사해야 할 직무를 유기한 채 권력을 남용하였다. 이 터무니없는 스캔들의 민낯들이 드러나면서 남녀노소,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시민들은 광장으로 몰려나왔고, 힘을 남용한 이에게 그리고 그 힘을 등에 없고 반칙을 일삼아 기회를 독점하고 부를 쌓은 사람들에 분노하며, 공평과 정의의 회복을 촉구하는 촛불을 힘차게 들어 올리고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한국 사회는 공평과 정의가 바로 서기를 갈망하는 전환기적 시간을 지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과 성탄절을 지나며 회개와 기다림, 사랑과 나나눔, 희망의 촛불을 밝혀온 지금, 우리는 광장을 밝힌 촛불을 생각하게 된다. 광장의 촛불과 예배당을 밝히는 촛불은 분명 다르고, 그 외침과 기도 소리 또한 전혀 같지 않을진대, 새로운 세상과 구원을 여망하는 마음의 결만은 그리 다르지 않는 것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요 1:5)는 진리를 마주하며 세상을 밝히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던 때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혹한 시대였다. 소망은 없었고 삶은 고단하였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외치는 예언자의 외침도 끊어진지 400년이 지났고, 카이사르 로마 황제의 정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였다. 로마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로마의 평화 외엔 그 어떤 평화도 용납되지 않았다. 분봉 왕 헤롯이 정치적 야욕을 위해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내키는 대로 죽일 수 있었고 백성들은 숨죽여 애통해야 했던 시대였다. 그렇게 시대는 어두웠다. 그러나 어두움을 밝히는 새 빛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동방의 박사들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갖고 별빛을 따라 수천 킬로를 가로질러 메시아를 영접하였다. 밤을 새며 양을 지켜야했던 가난한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해준 메시아 탄생을 듣고 즉시 달려갈 수 있었던 깨어있는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목숨을 걸고 예수의 수태를 기꺼이 받아들인 마리아와 의로운 사람 요셉은 임마누엘, 예수 탄생을 기다리며 한 밤중에 믿음의 촛불을 들어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밝혔다.  

그들이 맞이한 메시아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여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다, 눈이 먼 자를 다시 보게 하셨으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다(눅 4:18-19). 주님은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셨다. 불의한 이들에 의해 세상 주변부로 밀려나있던 이들을 중심의 자리에 다시 세워주시고, 죄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 말씀하셨다. 그분의 정의는 무조건적인 평등도, 부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주는 폭력적 정의도, 기계적 정의도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일한 이들에게만 아니라, 일이 거의 끝이 날 무렵, 뒤늦게 일할 수밖에 없는 자에게도 후하게 품삯을 쳐주시는(마 20:1-16) 은혜에 터한 정의였으며 생명을 살리는 정의였다. 주님은 가난한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우리 곁에 있는 길가의 사람들, 그 강도만난 연약한 이들을 살피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연대의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도 일려주셨다. 무엇보다 그 분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정의란 사랑과 희생을 통해 성취되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정의와 공의의 새 물결은 멈추지 아니하고 세상으로 흘러들어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갔다. 노예무역을 철폐시킨 윌버포스, 흑인을 해방시키고 인권을 증진시킨 링컨과 마틴 루터 킹, 생명을 걸고 불의한 나치정권에 저항한 본회퍼,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죽임당한 오스카 로메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종식시킨 넬슨 만델라 등, 역사의 전환기마다 하나님의 정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비관주의를 넘어서 자기희생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흘러가도록 역사의 물고를 터왔다. 

공평과 정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인의 역사적 응답들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책임 있는 삶의 자리를 모색하게 한다. 무엇보다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게 요청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움에 대한 거룩한 비전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사사화된(privatized) 신앙을 넘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의 정의로운 번영과 선의 증진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의와 정의의 비전속엔 물질의 축복만이 하나님의 복이라 말하는 성공주의 신앙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 없이 교회 안으로만 퇴각하려는 게토화된 신앙도, 정치적 힘과 권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콘스탄틴적 유혹도 설 곳이 없다. 또한 이 비전은 급격한 세속주의의 물결 속에서 돈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삶의 최고 가치로 삼아왔던 우리 자신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동반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의 간극과, 지연과 학연, 혈연이라는 비겁한 논리의 울타리를 방관하고, “금수저, 흙수저”란 자조어린 이분법이 횡횡하고, 생명을 키워내는 것을 포기해버린 슬픈 공동체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우리 안의 냉소주의와 무관심을 몰아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대림 성탄절은 보내는 2016년의 끝자락이다. 시대의 어두움 속에서 정의를 목말라하는 이 땅의 한 겨울을 지나며, 평화의 왕이요, 의의 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우리들만의 예수가 아니라, 이 땅 모든 이들의 희망이요 힘과 위로의 주로 맞이하도록 그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온 땅의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이 흘려보내신 정의와 공의의 물길이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도록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기도와 작은 실천들이 오늘 이 땅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문화선교연구원장 백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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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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