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시대에 하나님을 말하다 [4] 신처럼(God-like)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해 부쩍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교회는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며 기독교 문화를 형성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4월 5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와사회연구부·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 주최로 "AI(인공지능) 시대에서 하나님을 말하다" 신학강좌가 열렸습니다. 이에 강의 자료를 주최 측과 강사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고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비판적 안목과 대안적 현장 감각을 구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후 알파고에게 붙여진 여러 별명들 중 바둑의 신()”이라는 별명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AI 바둑 프로그램에 대해 그저 한번 신기해하며 붙여보고 지나가게 되는 별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그 이유는 AI 프로젝트가 초기 단계에서부터 품고 있었던 최종 목표 단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AI 프로젝트는 그동안의 모든 첨단 테크놀로지들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미래 과학기술 프로젝트이다. 여기에는 알파고와 같이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컴퓨터)를 만드는 분야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인간 자체를 강화시키려는 인간 강화 기술(Human Enhancement Technologies, HET)을 모두 포괄한다. HET1차 목표는 인공 팔, 인공 다리, 인공 심장 등 인간의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이 목표를 차근차근 실행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추구된 2차 목표는 그러한 강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이 되었고, 인간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려 노력하면서 품게 된 최종 목표는 결국 죽지 않는 것이 되었다.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죽음을 종말로 여기는 과학의 논리 속에서 AI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최종 단계, 곧 과학기술의 유토피아(technological utopia)는 첨단 테크놀로지들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에서 수명을 무한히 연장시킴으로써 죽음을 무한정 연기하는 미래 인간(posthuman)들의 세상이다.


성서 속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이야기에 비추어볼 때,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무한히 수명을 연장해서 죽지 않는 삶(immortal life)을 살려는 인간의 욕망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상에서 수고한 후 죽음으로 귀결되는 삶을 살게 된 인간이, 다시금 에덴동산에 찾아들어와 생명나무의 열매까지도 따먹고 영생하려는 욕망으로 비유하여 볼 만하다. 성서에서 이러한 욕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하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창세기 322). 또한 이러한 도전을 미리 예견 하셨는지 하나님께서는 그를 쫓아내신 다음에, 에덴동산의 동쪽에 그룹들을 세우시고, 빙빙 도는 불칼을 두셔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24).


첨단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수명 연장으로 죽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서 제시하는 두 가지 사안은 질병노화이다. AI 프로젝트는 GNR 곧 유전학, 나노테크놀로지, 로봇공학을 통하여 인간의 질병들을 계속 정복해나가고 있으며, 그로인하여 노화를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인간의 평균 수명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데에 성공해오고 있다. 만약 언젠가 질병과 노화를 모두 정복하게 된다면, 인간은 AI 프로젝트가 꿈꾸는 최종 단계인 죽지 않고 끝없이 살게되는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질병과 노화는 성서가 말하는 그룹들불칼이다. 인간이 AI 프로젝트를 통해 최종 목표인 죽지 않고 끝없이 사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그 목표를 가로막고 있는 질병과 노화를 정복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은, 마치 첨단 테크놀로지들로 무장한 사람이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위해 그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그룹들과 빙빙 도는 불칼을 물리치고자 전력투구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러한 도전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 인간의 최고의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한편 신체 부위를 아무리 강화하여 기계로 대체시킨다 해도 죽음을 무한히 미루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은 유한한 육신을 과감히 포기하고 정신을 통하여 영원히 사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뇌의 기억을 최고로 집약된 컴퓨터 나노칩 속에 저장함으로써 육체가 아닌 정신 상태로의 무한한 삶을 시도하려는 뇌 다운로드 기술은 비록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러한 시도의 첫 걸음이다. 앞서 살펴본 트랜스휴머니즘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 또한 육체 없이(bodiless) 정신으로서 영생하는 미래 인간이다. 카네기 멜론 대학 로봇공학과의 연구가이자 미래학자인 한스 모라백(Hans Moravec)은 이미 십수년전에 그의 책 Mind Children (1988)에서 육체가 없는 초인공지능(super-intelligence)으로서의 미래 인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이와는 달리 성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육과 영을 함께 지닌 통전적인 존재로서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말한다. 이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학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 사건은 영으로서뿐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영으로서뿐 아니라 육체를 지닌 인간을 향한 그의 통전적인 존재론적 구원 사건이었음을 제시한다. 이에 비추어볼 때, 육체를 벗어던지고 정신으로서 영생하려는 AI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시도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 사건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에 대한 도전이다. 기독교 전통 속에서 보면, 육체를 비하하고 정신만을 추구하려는 AI 프로젝트의 시도는, 마치 초기 기독교 시대에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영으로서의 그리스도만을 인정하려했던 영지주의의 지나친 시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기독교 신학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AI 프로젝트의 도전에 반응해야할 뿐 아니라, 이처럼 과학기술적 영지주의(technological Gnosticism)의 가능성을 내면적으로 품고 있는 AI 프로젝트의 도전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육체를 포기하고 정신에 집중하여 과학기술적 영생을 꿈꾸는 AI 프로젝트의 야망은 과거에 기독교를 향한 과학자들의 도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야망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던 이전 과학자들이 존재자체를 거부하던 영적(spiritual) 세계를,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려하는 현대 과학자들이 정신적(mental) 세계를 통하여 유사하게 맛보려하는 고난이도의 도전이다. 이 도전의 핵심은, 예전과는 달리 과학의 관심이 물질적인 것에서 물질 너머의 것, 곧 정신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심의 변화 속에서는, 물질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 과학이고, 물질 너머의 것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 종교라는 과거의 단순한 이원적 사고의 틀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테크놀로지가 말하는 정신(mind)과 기독교가 말하는 영혼(soul)이 다르겠으나, 둘 모두가 물질 혹은 육체를 넘어서서 그 다음 단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경계의 무너짐에 대해 기독교 신학은 다시 그 경계를 정확히 그어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AI 프로젝트가 말하는 수명의 무한한 연장을 통한 불사생(immortal life)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육신의 죽음을 전제로 하여 주어지는 기독교의 영생(eternal life)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또한 육체 없이 정신으로서 무한히 연명하며 영생하려는 AI 프로젝트의 유토피아는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펼쳐지는 영적 천국과는 결코 견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신학은 기독교의 구원관을 통해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알파고 수준의 AI가 등장하기 이미 5년 전에 미국 타임지가 커즈와일과 같은 미래학자들의 예견을 담아 ‘2045년에 인간이 죽지 않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커버스토리로 올리고 있는 과학기술 사회의 현실 또한 기독교 신학은 민첩하게 인지해야 하고, 이러한 시대적 담론에 민감히 반응해야 한다. 특별히 수명 연장과 정신적 영생에 대해 AI 프로젝트가 만들어가고 있는 현대 사회적 담론을 향해 신학은 죽음구원의 기독교적 해석을 통하여 신학 나름대로의 현대적 담론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김동환 교수의 글에 대한 찬반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다면 cricumorg@naver.com로 보내주세요.]





김동환 교수는 현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학적 비평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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