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시대에 하나님을 말하다 [3] 인간을 넘어서(Transhuman)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해 부쩍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교회는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며 기독교 문화를 형성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지난 4월 5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와사회연구부·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 주최로 "AI(인공지능) 시대에서 하나님을 말하다" 신학강좌가 열렸습니다. 이에 강의 자료를 주최측과 강사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고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비판적 안목과 대안적 현장 감각을 구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구성

1. AI(인공지능프로젝트

2. 인간처럼(Human-like)

3. 인간을 넘어서(Transhuman)  - 현재글

4. 신처럼(God-like)


알파고가 만들어진 동기가 인간처럼생각하는 바둑 프로그램이었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사실 그 동기 속에 이미 처음부터 품어왔던 인간을 넘어서는 바둑 프로그램이었다. 인간 최고 프로 바둑기사와의 대국에서 41패라는 대승을 거둔 알파고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AI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인 현재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벌써부터 인간을 넘어서는 AI의 높은 단계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시키고 있다. 한 번의 대국으로 한국기원으로부터 명예 프로 9단증을 수여 받으면서 당당히 세계 바둑 랭킹 2위에 오른 알파고를 알사범이라 부르면서 인간 프로기사들이 실제 대국에서 알사범의 새로운 방식을 따라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AI가 아니라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지닌 AI, 그래서 오히려 인간들이 ‘AI처럼되고자하는 AI 시대를 미리 예견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바둑에서만큼은 인간처럼 자유롭게 사고하는 알파고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을 넘어서는 AI의 미래 등장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많다. AI를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하자면, 하나는 SF영화에 나오듯 자신을 지키고 위협을 물리칠 수 있는 자아를 지녀서 인간마저도 위협할 수 있는 강한(strong) AI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발되어 인간의 요구에 부합하는 수준의 지능과 능력을 지닌 약한(weak) AI이다


[그림 김동환 교수 제공]


물론 알파고는 바둑이라는 특정한 게임을 잘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약한 AI의 범주에 들어간다. 약한 AI의 등장도 아직 초보단계이기에 강한 AI가 등장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라는 말이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유념해야할 점은 이런 예측이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거의 항상 그래왔듯이 그것이 제시되는 현재에서만 들어맞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예측과는 대조적으로 이미 2년 전인 2014년에 영국 BBC 방송을 통해 “AI가 최고조로 발전하게 되면 인류는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강한 AI의 등장에 대한 경고를 함부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강한 AI의 등장이 불가능하리라는 입장에서 최근 제시되는 주된 내용은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감성, 창조성, 예술성 등은 AI가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틀린 것이리라 예측할 수 있는 논거가 있는데, 그것은 AI의 기본 알고리즘인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 사람처럼 경험으로부터 학습하여 스스로 성능을 향상하도록 짜여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AI에 빅 데이터를 입력하는 기본 작업은 인간이 해주지만, 그 다음에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머신 러닝, 곧 자체 학습을 하는 것은 AI의 몫이기에, 결국 어떠한 결과가 도출될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알파고가 어느 순간에 어느 지점에다 바둑알을 놓을지를 구글 딥마인드의 제작자들조차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단순한 예이다. 더불어 감성 로봇 개발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일본에서 최근 문학상 공모전 1차 심사를 통과한 단편 소설이 AI에 의해 쓰여진 것이며, 아직 초기 개발 단계인데도 그 정확한 최종 문장을 제작자조차 예측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감성, 창조성, 예술성을 지닌 AI가 등장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흔들리게 만든다.


[일본에서 문학상 공모전 1차 심사를 통과한 AI의 단편 소설의 첫 문장]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앞으로의 논의의 초점은 AI에게 감성, 창조성, 예술성이 가능한가를 넘어서서, 이를 결국 모두 이루어낸 AI가 과연 자유의지나 양심이나 도덕성까지도 지닐 수 있는가로 상향될 필요가 있으며, 만약 이 또한 지니게 된다면 AI에 대한 윤리적 담론까지도 형성되어야할 것이다. 이호근 교수는 최근 이러한 통찰을 지닌 글을 통하여, “생명과학분야의 기술개발에 생명윤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분야도 도덕적 기계(Moral Machines)'를 만들기 위한 윤리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담론을 형성시킬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분명 신학(특별히 도덕신학이나 기독교 윤리학)이기에 이에 대한 신학적 담론의 준비는 필수적이다.


십수년도 전에 미래 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수확 가속의 법칙’(law of acceleration returns)에 근거하여, 현대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를 추적해보면 하나의 신기술이 나타난 후 그 다음 신기술이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기하급수적(exponential)으로 단축되고 있다고 예견했으며, 2005년에 그는 그러한 발전을 거듭하다가보면 인간이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을 특이점(singularity)이 올 것이며 그 때를 2045년 즈음으로 예측하였다. 그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특이점에 이르자마자 약한 AI의 시대는 순식간에 지나가게 되고 이제는 인간처럼 생각하려던 AI가 인간을 넘어서서 사고하게 되는 강한 AI의 시대가 급격히 도래 하게 된다.


[수확 가속의 법칙에 따라 현대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를 추적한 그래프]

현재로서는 아직까지도 의구심이 들 수 있는, 인간을 넘어서는 AI에 대한 논의는 최근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통해 공론화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용어는 SF소설 Brave New World (1932)로 잘 알려진 알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형제 쥴리안 헉슬리(Julian Huxley)가 그의 저서 Religion Without Revelation (1927)에서 인간의 본성을 초월하는 가능성을 지칭하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 사용하였다. 용어 속에 나타난 트랜스(trans-)는 기존 인간으로부터 다른 인간으로 전이(transition)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기존 인간을 초월하는(transcending) 인간을 뜻하기도 한다. 둘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기존의 전통적인 인간이 불완전함을 파악하고 첨단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현존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새로운 인간을 등장시키려는 것이다. 이 용어는 그 후 첨단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에 의해 20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하여 첨단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루고자하는 미래 인류를 지향하는 새로운 학문적, 사회적 운동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이자 미래학자이자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에 의하면, 트랜스휴머니즘이란 과거 30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일어난 운동으로서 유전학, 정보기술, 나노기술,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에 주요 관심을 두며, 이러한 테크놀로지들의 진보에 의해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제반 조건이 강화되는 기회들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다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자기초월을 향한 욕망은 기독교 휴머니즘과 그 출발선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기독교 휴머니즘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피조성(creatureliness)로부터 시작하는 반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 자신이 논의의 출발점이 되며, 인간이 스스로를 초월하는 새로운 존재 곧 트랜스휴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극도로 인간 중심적인 창조성으로부터 시작한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숙고를 통하여 피조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교만(pride)이며, 그 교만은 필연적으로 죄를 낳는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이해를 좇아 이러한 교만, 즉 피조성을 거부하는 인간의 교만이 원죄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독교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출발선에서부터 극도로 인간 지향적이며 인간 중심적 창조성을 지니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으로 하여금 교만이라는 죄성을 지니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휴머니즘을 구성해낼 여지가 많다.


특이하면서도 주목해볼만한 점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인간중심적 휴머니즘을 말할 때 의도적이리만큼 신중심적 인간이해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철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맥스 모어(Max More)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지지하면서 인간의 자기초월의 삶 속에서는 결코 자기희생이나 초월적 존재들을 향한 예배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동안 하나님의 개념은 압제적(oppressive)이었다고 단정한다. 엄밀히 말하면, 신학이 트랜스휴머니즘이 제시하는 인간중심적 인간이해가 기독교 휴머니즘의 신중심적 인간이해와 다르다는 이유에서 논쟁하거나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의 인간중심적 인간이해를 피력하기 위하여 신중심적 기독교 인간이해를 표면적으로 비판하고 도전하는 경우라면, 신학은 최소한 자신의 인간이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정면 도전과 비판에 대응하고 대답할 수 있는 신학적 담론을 구축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첨단 테크놀로지들의 총체라 할 수 있는 AI 프로젝트를 사변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트랜스휴머니즘을 제시하는 미래학자들이 감당하고 있기에, 갈수록 부각되어가는 그러한 담론의 형성을, 그 내용 속에서 실제로 도전받고 있는 기독교 신학이 넋 놓고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처럼 되려는 AI 프로젝트가 인간을 넘어서려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기본 개념인 하나님, 인간, 창조성 등을 사변적으로 건드리면서 이를 넘어서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담론의 형성에 신학은 부지런히 대처해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의 아우구스티누스-니버 계열의 피조성, 교만, 죄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미래학자들의 도전에 대처하는 하나의 신학적 담론의 예시가 될 수 있다다음 연재글 [4] 하나님처럼(God-like)에서 계속됩니다



김동환 교수는 현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학적 비평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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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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