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미디어 #4] 빈곤의 포르노그래피







 

1. 빈곤을 팝니다.

최근, 아니 꽤 오래전부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글을 공유하면 유니세프에 100원이 기부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주위의 친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은 적극적인 좋아요공유를 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불쌍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향한 공감과 응원을 보냈다. 과연 그 많은 후원과 관심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됐을까



얼마 전 유니세프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해당 포스트가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공지했다. 이는 좋아요공유를 통해 팔로워들을 늘려서 페이스북 계정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누군가의 의도적인 꼼수였다고 추정된다.(해당 계정은 현재 폐쇄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한 장의 강렬한 빈곤 이미지SNS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 빈곤의 포르노그래피(Poverty Pornography)

이러한 현상은 빈곤의 포르노그래피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빈곤 포르노란 상업적인 목적 또는 자선 행위나 특정 사안에 대한 지지를 늘리는데 필요한 동정심을 이끌어내고자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부각하는 모든 형태의 미디어(서면, 사진, 영상 등)를 의미한다.[각주:1] 뉴욕타임스의 Alice Miles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한 비판에서 처음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영화는 인도 슬럼가 아이들의 삶을 묘사하면서 가난과 범죄, 경찰의 폭력과 아이들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각주:2] 이 기사 이후 영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빈곤 포르노또는 슬럼 관음주의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3. 과장과 왜곡의 유혹

빈곤 포르노의 현상은 구호 활동 기금을 모으기 위한 NGO 단체에서 많이 나타난다모금 활동에 자극적인 빈곤 이미지를 활용했더니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은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다때문에 단체들은 사람들이 더 빠르게 후원을 결단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충격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이러한 빈곤 포르노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한다는 점이다때로는 아이들의 노동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한다거나식수 환경을 강조하는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더러운 물을 마시게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동정심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이미지가 점차 더 많아지면서동시에 사람들의 피로도 역시 증가하게 되었다웬만큼 불쌍한’ 이미지로는 사람들이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이를 위해서 더 자극적인 과장과 왜곡이 발생하게 되었다결국 이러한 악순환은 아프리카 전체에 대한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편견을 형성하고스스로가 흑인을 구원하는 구원자 콤플렉스를 증대시켰다



모금 방송 전문 배우 마이클의 이야기. 2013년에 제작한 “Let's save Africa! - Gone Wrong”에는 모금 방송 전문 배우로 등장하는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빈곤과 가난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모금 방송의 위선을 풍자하고 있다.


4. 은혜와 선정성,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이러한 빈곤 포르노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예수 생애의 마지막 12시간을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는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기독교 영화로 기록된다. 이후에도 고난주간마다 수많은 교회에서 상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필자는 오늘날 영화를 다시 돌아보면서 "왜 예수의 사랑을 이토록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으로 연출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예수의 십자가 위에 유혈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가미해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등급 영화 중 흥행수익 1위로 2016년 현재 4276억 원을 벌어들였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은 은혜였을까? 아니면 그 영상의 선정성이었을까?

 

5. 자극의 홍수 속에서 갈증을 느끼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러한 과장과 왜곡의 유혹에 맞닥뜨리게 된다. 수련회 둘째 날 밤 아이들에게 십자가에 매달려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가시는 예수님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죄의 회개와 눈물을 강요한다. 선교후원을 얻기 위해서 후원자의 마음을 감동시킬 불쌍하고 가난한 현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설교의 예화는 성도들의 은혜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각색되고 과장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더 강하고, 자극적이고, 임팩트 있는 예화를 찾기 위해 온갖 예화 사이트를 방황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예화를 발견하면 그 진위 여부는 묻지 않은 채, 아무런 검증 없이 설교에 인용한다. 이러한 자극을 통한 감정적 동요를 우리는 은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극의 홍수 속에서 성도들은 갈증을 느끼고, 그 갈증을 풀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찾지는 않는가?

 

6. 한적한 곳으로 가사(1:35)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부르시고(1:16-20), 귀신 들린 사람들 고치시고(1:21-28),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고(1:29-31),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뒤에(1:32-34),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1:25). 병 고침의 짜릿한 자극을 맛보았던 모든 사람이 주를 찾았지만(1:37), 예수님께서는 그 자극을 피해 한적한 곳에 이르러 오직 하나님과 대화하셨다. 자극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자극이 아니라 오히려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는 아닐까?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 없이, 짜릿한 신앙적 자극만을 은혜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도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본다.

 

조성실 장로회신학대학원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박사과정 중에 있다. 본원의 객원연구원이자 소망교회에서 미디어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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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tt, “What is ‘poverty porn’ and why does it matter for development?”, Aid Thoughts, 2009.07.01. 이유정 (http://www.odawatch.net/articlesth/464896)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2. Alice Miles, “Shocked by Slumdog’s Poverty Porn,” The Times Online, January 14, 2009, http://www.timesonline.co.uk/tol/comment/columnists/guest_contributors/article5511650.ec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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